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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5. 12.

도생책략-축소사회에서 살아남기

 저출산은 세계적 추세다. 이는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특별하게 박살나버린 한국의 출산율을 변호할 수 없다. 보편적 요인 뿐만 아니라 특별한 요인이 사회에 있어 한민족 최초의 퍼스트 무빙을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는가?

미래 예측은 항상 어렵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감정적인 편향을 무시하기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가운데에 있을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과 고통에 찬 절망 사이에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경우에는 낙관보다 절망의 중력이 더 크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출산율의 원점회귀를 가정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너무나 절망스러운 삶을 사는 나머지 차라리 세상이 망해서 자신의 불행이 끝날 여지를 바라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의 붕괴가 명백하더라도 역사적 정산은 즉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은 붕괴하기 몇 년 전부터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공산주의도 그 내제된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수십년을 이어갔다. 심판의 날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종말의 예언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심판의 날이 오더라도 지리멸렬한 삶은 이어질 것이다. 이미 어떤 소설가는 말하지 않았나? “이렇게 세상이 망하는구나. 쾅, 하는 소리가 아닌 훌쩍거림과 함께.”

하지만 이를 논하는 것은 본문의 영역을 벗어난다. 본문에서는 정부의 무능 혹은 무관심을 인식하고 저출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결과적으로 축소사회의 고요속에서 개인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을 논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대비라는 경계조건을 만족하면서도 오히려 사회가 망하기를 바라는 또는 망하는데 배팅하는 대비는 피하는 것이다. 나조차도 사회가 지속가능하길 바란다. 이 글은 외출시의 우산이 될 뿐이지 기우제에 재물을 봉납하기 위함이 아니다.

첫째로 운동을 해야 한다. 이는 좀비사태를 대비하거나 현실에서 배그를 찍으려는 미친생존주의적 계획이 아니다. 단지 기초적인 체력을 위해서이다. 인생웰컴 건강버프는 서른 전에 끊긴다. 그 후부터는 지금까지 만들어둔 신체로 살아가야 한다.

하늘이 도와서 한국의 건강보험재정이 내 삶이 끝날 때 까지 버텨만 준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퇴행성질환, 이상지질혈증, 만성적인 염증, 암까지 보장받으며 진료받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을 하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신앙인의 삶이다.

종말의 예언자가 자신이 정말로 옳았다는 사실을 깨달는다해도 이미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삶을 살고 있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종말론은 그저 고통을 수동적으로 끝내고자 하는 자기파괴에 불과하다.

둘째로 해외자산을 모아야 한다. 일본이 ‘잃어버린 삼십년’ 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잃어버릴 재산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엔화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주축중 하나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든든한 해외자산이다.

모두가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지나친 소비를 거두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다. 축소사회에서는 생산도 소비도 급감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고 축소사회를 대비하면서 왜 지금 생산을 늘리려하지 않으며 소비를 줄여나가지도 않는가?

그러나 더 나아가 금과 같은 귀금속을 비밀리에 모으려는 데에는 부정적이다. 상장된 증권이 국가에 압류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이르러서는 이미 자산은 의미가 없을 것이며, 금은보다는 납탄이 더 유용할 것이다.

셋째로 많은 재주를 익혀야 한다. 축소사회란 결국 분업화의 역류이다. 만명 사는 도시에서는 못머리만 만들어도 되지만 백명 사는 도시에서는 한 사람이 못 전체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 못만 만들어서는 먹고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십수년간 사회는 스페셜리스트를 원해왔다. 하지만 그 전제인 분업화가 역류한다면 오히려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살아남을 것이다. 직접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해보자. 자동차 필터를 갈아보고 고장난 콘센트도 갈아보자. 요리도 좋은 선택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능력은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어떤 방법이 있다, 혹은 나중에 어디서 어떤걸 찾아보면서 해야겠다 하는 정도의 재주면 된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거의 대부분 오픈북테스트 아니겠는가.

상기의 세 가지 방법은 모두 나같은 소시민을 위한 것이다. 이민 갈 능력은 없으니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혼란스러운 사회일수록 강건한 자신이 필요하다. 타인을 해치지 않더라도 일어설 수 있는 강건한 자신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 한국이 광란의 AV페스티벌 전국투어를 통해 2.69 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초전도체를 개발하여 갑자기 강대국이 되어버리더라도 문제 없다. 어쨌든 당신은 건강과 자산과 교양을 얻지 않았는가? 뭐가 불만이겠는가.

2022. 8. 22.

조화로운 삶 을 읽고

  1. 왜 그들은 버몬트 숲으로 향했나?

  2.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

  3. 노예는 두 번 찌른다.

 

2020. 2. 17.

미니멀라이프는 선(Line)이 아니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고해서 당장 집안에 있는 물건과 가구를 죄다 버리고 텅빈 방에서 수저 한 쌍 손에 들고 하는 명상은 미니멀라이프라기보다는 정신과 통원치료를 시작하기 좋은 계기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하여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만년필을 쓴다. 병에 만 원 하는 잉크를 리필해줘도 시간이 지나면 마르는데다 가끔씩은 미지근한 물로 청소도 해주어야 하는데, 이지랄을 하느니 차라리 플러스펜 한 자루를 들고 다니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년필의 필기감을 사랑한다. 닙이 종이를 긁으며 잉크를 남기는 소리는 내 창의성을 살살 자극할 뿐더러, 내가 꼴에 글 쓰는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만년필은 상술한 지랄맞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 행을 면했다.

그 외의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버렸다. 미니멀라이프의 역사적 사명을 지키기위해 버린 것은 아니다. ‘좁아터진 집구석 청소거리만 늘리느니 버리고 말지’ 싶어서 버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이놈의 돌덩이 먼지 닦아주느니 버리고 말지’ 라고 말한 이유가 있는 샘이다.

한바탕 생난리를 피우고 난 뒤, 확실히 집안은 깔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냐면 그건 또 아니올시다. 깔끔해진 집 안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원래 잘 쓰지도 않던 쓰레기 조금 지웠다고 해서 또다른 삶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럼 도당체 고것이 청소랑 다른게 뭐시기여?’ 라고 묻거든,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에 대해 한가지 질문을 더 던지게 한다:과연 이것이 나에게 먼지 수집기 이상의 가치가 있는가? 그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예전 같으면 샀을 물건도 사지 않게 된다.

그 결과는 쾌적한 생활공간과 두툼한 지갑으로 돌아온다. 쾌적한 생활공간은 나에게 두 다리 뻗을 여유를 주고, 두툼한 지갑으로는 주로 치킨을 사먹는다. 치킨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멀라이프 없이는 이렇게 두 발 뻗고 닭다리를 뜯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쯤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만족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닭다리 한 조각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린 남은 여유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반드시 고상한 일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면 충분하다.

미니멀라이프는 규약이 아니라 행복해 질 수 있는 가능성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사복의 제복화니 하는 것들을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맹목적인 행동은 행복이라는 본질을 감추고 만다. 미니멀라이프에 얽메여 행복까지 버리지는 말자.

오히려 차고 넘치는 물건이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면 구태여 자신의 손으로 불행해 질 필요는 없다. 매일 밤을 ‘아 씨... 살까, 말까?’ 같은 고민으로 지세운다면, 그냥 속 시원하게 사버려라. 어지간히 필요했으니 그러지 않았겠나?

미니멀라이프는 선(Line)이 아니다.

중대한 결심과 획기적인 변화를 안고 넘어갈 필요도 없고, 그어진 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내가 편하자고 하는 짓은 내가 편해야 한다.

2019. 3. 2.

살어리 살어리랏다 월든에 살어리랏다

0. 서문

헨리 데이비드 소로, 라는 이름으로만 말하면 아는 사람이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 불복종 운동을 쓴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월든을 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1845년,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년 2개월 2일이라는 시간동안 그곳에서 스스로 농사를 짓고 생활하며 '살았다'. 소로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아냈다.

사람은 평생동안 한 팩의 먼지만 먹어도 될 운명인데,
왜 그들은 25헥타르의 땅에서 나는 먼지를 먹어야 하는가?

소로는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소비하느라 사람의 가장 귀중한 부분까지 퇴비로 써버리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로처럼 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

1. 토지 마련

이러쿵 저러쿵하여도 사람은 본디 땅에 선 존재인지라, 발 디딜 땅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소로는 월든에 자신이 소유했던 땅의 자세한 사항을 기록해놓았다.
그 밭은 전체 면적이 4.5 헥타르로, 
지난 해에 1핵타르당 3달러 32센트에 팔린 땅이었다.

4.5헥타르는 한국의 평으로 따지면 13612.5평이고, 미터제곱으로 따지면 45,000미터제곱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3달러 32센트라는 대금은 현재와 비교하면 과연 어떤 가격일까?

다행히도 인터넷에는 매년의 인플레이션율을 토대로 일련의 계산을 대신해주는 사이트가 있다. 필자도 그 곳에서 도움을 받아 계산을 할 수 있었다.

https://www.officialdata.org/1844-dollars-in-2018?amount=1


$32.48

그러니까 소로는 평당 40원씩을 주고, 국제규격 축구장 6개 반 너비의 땅을 사는 데에 총 547,198원을 썼다. 우리도 이런 땅을 구할 수 있다면, 손 쉽게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다.

* * *

2. 신포도 작전

사실 무소유라는 말은 현대에 있어서 그리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붉은 여왕의 효과' 처럼 경쟁하지 않으면 그만큼 뒤쳐지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매우 슬픈 일이지만, 적응해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지금까지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도 멸종하지 않은데에는 '적응' 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 06시 46분. 창 너머로 맑은 해가 보인다. 해묵은 새벽과 작별하고 어제와 또 다른 오늘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일 하러 가자! 평당 40원 하는 땅을 찾을 때까지.

2018. 12. 19.

내일로 후기

내일로는 트레이드 오프가 극대화된 상품이다.

여러차례 이야기했듯, 겨울이라는 기후로 인해 여행의 절반을 손해봤다.

하지만 마냥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비수기의 이점을 누린 부분도 분명히 있다.

여름에는 여행에서, 겨울에는 여행 외적인 부분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

즉, 어느 계절에서든 포기를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트레이드 오프 문제의 가장 대표적인 해결법에는 돈칠이 있다.

봄 가을에 돈 많이 내고 가라. 내일로는 봄 가을에 안 판다고?

내일로는 트레이드 오프가 극대화된 상품이다.


길다면 길었던 여행이 끝났고, 여행에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환상을 부수고, 결국 그곳 역시 사람 사는 곳 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

비록 환경에따라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이것이 때로는 과대포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광지를 싫어한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이런 과대포장된 환상에 펌프질까지 해서 비싼 값에 팔고 있다.

내 장담컨데 부산의 기묘한 이미지에 일조한 만화 ‘스까듭빱’이 메이저한 위치에 올랐더라면,

분명 어떤 사람들은 남포동에 ‘30년 전통 섞어 덮밥’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할 것이다.

그것도 비싸게.


인터넷에서는 실물보다 아름다운 관광지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최적의 각도와 기후, 그리고 광원의 위치까지 고려하기 때문에 못 찍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관광지만을 보기 위한 여행은 실제로는 절반을 손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관광지에 가야한다면 화각 너머를 보기 위해서여야한다.


하지만 마냥 비판적인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 좁아 터진 땅덩이라고 하나, 일주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인생의 업적점수를 체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보람찬 시간이 될 것이다.

2018. 12. 17.

내일로 -4일차 부산

어젯밤에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좋다 말았지, 나는 그 사람들이 깰세라 조심스럽게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부산은 생각보다 접근성이 좋지 않았다.

광주처럼 주변으로 철도가 문어발처럼 달린줄 알았는데, 그건 삼랑진이었다.

하지만 들리고 싶은 이유가 확고했기때문에 계속 진행했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지리를 먹고싶었다.

그렇다, 바로 그 복집.

솔직히 광안리니 감천이니 하는 것들은 초원복집에 딸린 부대시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전역에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 대연동으로 향했다.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버스가 직관적이고 또 편리했다.

₩12,000짜리 은복지리를 시켰는데, 당연히 이게 가장 싼거여서 시켰다.


국물은 조금 짜게 느껴졌는데, 이정도 되는 집이 짠거면 이 주변 간이 쌘가보다.

육질이 꽤 도톰했다. 예전에 복을 먹어본 적이 있어서 비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기춘이 기절할 만한 맛을 기대한 나는 조금 실망하고 광안리로 향했다.


미리 말해두건데, 강알리에는 등킨도나쓰가 없다.

아주 실망스러운 현실이었지만, 광안대교를 보자 솔직히 좀 놀랐다.


한 번쯤은 볼만 한 광경인 것 같다.

광안리는 서해사람이 보기 힘든 모래사장이었는데, 물도 맑았다.


문뜩 한국인의 종특이 피어올라서 낙서를 남겼다. 아마 다음 만조에 사라질 것이다.

광안리에 끝에 다다른 나는 버스를 잡아타고 바로 감천문화마을로 향했다.



감천문화마을은 음... 생각보다 볼게 없었다.

아기자기한 달동네가 인상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다른 관광지들처럼 그저 소비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와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이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일본인 관광객 두 명이었는데, 도착한 버스를 가리키며 "자갈치?" 라 물었다.

나도 초행길이어서 기사님에게 물어본 후 OK사인을 건네자, 밝은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자갈치 시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라디오에서 트와이스의 노래가 나왔다.

그 두 명은 따라서 흥얼거렸다. 이게 그 문화승리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보다.

가방에 김치가 없었기 망정이지, 그 두 관광객에게 선물로 줄 뻔 했다.


자갈치시장은 관광의 요지였다. 인근에 비프광장과 국제시장이 뭉처있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두건데, 볼 게 없었다.

부산은 그저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지같았다. 국내여행장소로는 부적합한 것 같다.

호객꾼들은 자꾸 성질을 긁어댔고, 특별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상어 한 마리가 바닥에 노숙중이었는데 이는 기억에 남았다.

비프광장에서 물떡(₩1,000) 하나를 사먹었는데 꽤 맛이 있었다.

조금 창렬한 감이 없진 않지만, 아무튼 관광지니까 바가지 한 번쯤 써 주겠다.

갓뺀 가래떡보다 쫀득하고 물컹했는데, 오뎅국물의 간이 베어 짭짤했다.

매일같이 먹기는 어려워도 이럴때 한 번은 먹을만 한 것 같다.


일정을 너무 이르게 마친 나는 구미로 향했고, 그 열차 안에서 일정을 재조정했다.

지금 구미-서울로 향하면 이틀을 아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5일권을 샀을 때보다 만 원을 손해본 셈이지만, 아무래도 좋다.

어짜피 시간에 쪼들리기 싫어서 7일권으로 끊어버린 거니까.

구미에 도착한 나는 겨우 뛰어서 박정희 생가로 가는 버스를 잡았다.

상모동에 도착해서 카카오네비를 키니 이상한게 보였다.

'월요일 휴무'

민주시민이 오는걸 두려워한 박정희가 정기 휴일을 걸어놓고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구미까지 가서 박정희 얼굴도 못 보고 돌아왔다.


오늘은 영 이득을 본 것 같지가 않다. 망한 것 같다.

와우 하고 싶다.

2018. 12. 16.

내일로 -3일차 보성, 순천.

아침이 새초롬하게 밝았다.

나는 토스트를 먹으며 창 밖의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그쳐가는 것 같았지만, 여행객을 심란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이 부족해서 어제 남긴 새우바게트를 먹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하루 지난 바게트는 맛이 없었다.

티백녹차를 마시며, 나는 여행 3일만에 처음으로 일정을 완성했다.

그리고 담양에 들릴 때부터 일정이 어그러졌다는것도 알았다.

이 여행에는 문제점이 네 가지가 있었다.

1. 담양에 들리겠다는 포부
2. 보성에 들리겠다는 희망
3. 구미에 들리겠다는 욕심
4. 저 세 가지를 기어코 하겠다는 호구

만약 담양, 보성, 구미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정동진과 도라산역에도 가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보성행 기차에 오르기 전에 다시 코롬방제과를 들렸다.

보성에 이름난 음식점을 찾지 못했다. 끽해야 녹차 삼겹살 같은거나 팔테지.

에플 파이(₩2,000)와 딸기쨈빵(₩1,200원)을 점심대용으로 샀다.

그리고 목포를 떠났다.


보성에 들릴 목적은 당연히 녹차밭이었다.

정식 명칭은 대한다원인데, 녹차밭 뿐만이 아닌 조경도 꾸며놓았다.

입구의 삼나무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나무와는 다른 깊이감을 주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왼편에 작은 녹차밭이 보였다.

입장료는 내일로 할인을 받아서 3,000₩이었다.

내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대나무 밭이었다.




죽녹원 못지 않은 빽빽한 맹종죽이 나를 반기어주었다.

만약 담양과 보성을 들리는 계획에 일정이 촉박하다면 보성만 골라도 될 것 같다.

대나무 숲을따라 좌측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다원이 나왔다.


양질의 찻잎이 든 티백 하나가 ₩2,000이었는데, 세 번 우릴 수 있었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지라, 차의 급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린다.

다만, 상당히 고소하고 은은한 감각이 꽤 오래 남았던 것 같다.

부득이한 사정이 겹치고 겹쳐, 대한다원의 오른편은 감상하지 못했다.

가장 급한 사정은 다시 시작된 빗방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오전에 사온 빵 두 게를 꺼냈다.


살면서 사과 스프레드가 아닌, 진짜 사과를 썰어넣은 에플파이는 처음먹어봤다.

두 개를 사왔어야 했다.


딸기쨈빵은 평범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 가격에 차별화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 지친 나에게 딸기쨈의 단맛은 황홀하게 다가왔다.


순천에 도착하기 전, 나는 두 갈래 길에 섰음을 알았다.

1. 오늘 순천만 정원을 가고 새벽기차로 부산행

2. 내일 순천만 정원을 가고 저녁은 여수, 부산은 내일 점심.

어느쪽을 골라도 일정에 큰 무리가 없었다. 여수 열차 시간이 딱 떨어지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수엑스포는 이미 다녀왔었고, 그동안 썰로만 전해들은 붓싼에 기대가 큰 지라 1안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두 선택지 모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겨울에 순천만 정원을 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매점들은 동절기 폐업중이었고, 꽃은 있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남은 시설들도 군데 군데 보수공사중이었다.

때마침 내렸던 비로 일부 구간은 입장이 통제되기까지했다. 판이 아주 이쁘게 돌아갔다.

두 시간동안 겨우 건진 사진들과 짤막한 설명을 남기며 정원이야기는 줄이겠다.

 이탈리아 정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양식이다. 단적으로 겨울 순천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호수공원과 언덕- 비가와서 언덕의 출입은 통제되었다.


프랑스 정원과 달- 멀쩡한 건물이 있었지만 덕지덕지 붙은걸 숨기기 어려워서 이거만 찍었다.


꿈의다리에서 바라본 강- 창문틀이 구형TV인게 재치있어서 찍었다.


한국정원의 산책길- 이런 길이 내 사진 취향이다.


한국정원의 한 가옥- 폰을 거의 물가에 닿을 듯 내리고 찍었다.


나는 완전히 지쳤다.

두 시간이나 되는 강행군과 추위로 내 동반자인 아이폰은 또 뻗어버렸다.

더욱이 아침과 점심을 빵으로 때운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김치남 그 자체인 나는 뜨신 국물이 안 들어가면 배거 너무 허전하다.

최소한 빵이라도 뜨셧어야 했는데, 식사가 멀쩡하질 않았다.

나는 완전히 지쳤다.

그나마 버스가 10분 안에 와준 것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고른 저녁집은 순천역 인근의 청춘창고였다.

빈 농협 창고를 개조해서 문화 및 푸드코트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 3일간의 여행동안 청춘창고가 가장 부러웠다.

서산에는 문화잇슈라는 단체가 비슷하게 활동중이긴 하지만, 훨씬 좋아보였다.

아마도 그건 유동인구의 차이때문일 것이다. 서산은 관광객이 오기 어려운 곳이니.

아쉬운 마음을 다시 잠재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맞다, 저녁먹으러 왔지.

여러가지 점포가 있었는데... 그래, 국물요리. 맞는 말이긴 한데...

사케동이 매일 15그릇 한정 판매중이란 글을 보고 눈이 돌아갔다.


뒤가 좀 허전해보인다면 눈썰미가 뛰어난 것이다. 배고파서 사진찍는걸 깜박하고 두 수저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비교하기엔 어렵지만, ₩8,000치고는 혜자같았다.

2층에는 공예품을 판매하는 점포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 취향들이 아니었다.

숙소는 역전시장의 길건너 게스트하우스

앞선 내 소비패턴을 보면 알 수 있듯, 가장 쌌다.

시설도 무난하고 다 좋은데, 콘센트가 좀 쉽게 빠져서 불편했다.

그래도 글 쓰는 지금까지는 6인실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있는걸 봐서, 나만 6인실을 골랐거나 내 앞에서 6으로 나누어 떨어졌나보다.

내일 부산으로 가려면 6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피해 줄 일이 없어서 다행인 것 같다.

2018. 12. 15.

내일로 -2일차 목포

사실 목포는 올 필요가 없던 도시였다.

이름난 볼거리도 없고 외지기까지해서 일정이 내 얼굴처럼 어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목포행 열차에 오른 이유는 자명하다.

부산을 가는데 목포를 안 가면 이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까 이유가 자명하다고 했던가? 미안하다, 바보같다.

사실 천천히 점심쯤 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빨리 일어나서 그냥 새벽열차를 타버렸다.

몇 정거장을 지나치자, 기차의 왼편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좌로 돌리면 아침이고 우로 돌리면 새벽인, 기묘한 경험이었다.


목포역에는 인근 미술가&학생들의 유화전시가 한창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움은 사진기와 녹음기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조식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는데, 앞으로도 끼니에대한 언급조차 없으면 매우 실망스러웠다는 뜻이다.

역에서 바로 내려와 언덕을 오르면 유달산의 초입, 노적봉이다.


여기만해도 목포시내와 다도해가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아직 크롬방제과에서 바게트가 나오는 시간이 되지 않아 정상으로 향했다.

관운각에 이르자 슬슬 뒤를 바라보는 것이 무서워졌다. 바위산은 항상 이렇다.

여기까지 즐기고 하산을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직도 시간이 덜됬다.

기여코 나는 고소공포증을 안고 정상, 일등바위로 향했다.


참고로, 이 사진이 정상으로 가는 길 마지막 사진이다. 더 높은 곳에선 무서워서 못찍었다.

그래도 용케 유달산 정상의 표지석을 볼 수 '는' 있었다.

하지만 그 표지석 주변의 공간은 체감상 대략 2m² 밖에 안되고 그 밑은 낭떠러지였다.

입에서는 욕이 절로 나왔다. 나는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이 호다닥 내려오는 수 밖에 없었다.

정상의 가장 높은 바위에 올라가기 전에 있는 표지석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유달산은 영혼들이 심판받으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확언하건데, 여기까지 심판받으러 올 영혼이면 구원은 이미 그른 것 같다.

슬슬 크롬방제과가 바게트를 내놓을 시간(10:40)이 얼추 되어 발걸음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에 그림이 이뻐서 찍어봤다.


크롬방제과는 친구의 강권으로 알게되고, 또 들르게 된 곳이다.

대략 10:30분부터 매대에는 바게트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나는 새우바게트(₩4,500) 하나를 사들고 2층의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내꺼보다는 조금 작은 사이즈였는데, 칼집이 들어가 있었고 사이에는 머스터드가 발라져있었다.

갓나온 빵을 먹는다는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고, 외지에서라고 예외는 없었다.

꽤 직관적인 설명을 하자면, 새우깡의 향기가 났다. 욕한게 아니다. 맛있었다.

줄이 매대에서 입구까지 나래비를 서 있었는데, 이 줄이 짧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크림치즈도 사보고 싶었지만, 입이 짧아 그러진 못했다.

나는 그곳에서 크림빵(₩2,500)을 사들고 여객선터미널쪽으로 향했다.


크림이 지저분한 것은 내 불찰이다.

크림빵에는 키위와 오랜지가 올려져있었는데, 깊은 곳에는 망고같은 것도 들어있었다.

생크림의 맛도 근래에 먹은 것중에 가장 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카페에서 산 아메리카노와 마시니 생크림이 사르르 녹아들어 즐거웠다.

크림빵을 다 먹을때즈음, 나는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항구도시 아니랄까봐 서산과 비교할 수 도 없이 큰 수산시장이었다.

여기 저기서 홍어를 팔고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사진이다.


서로 마주 보고 홍어를 써는 모습이 나에게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경연같이 보였다.

이어서 발길이 향한 곳은 김대중 노벨상 기념관이었다.

역시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 간 곳은 아니다, 그냥 가다보니까 보여서 가봤다.

다만, 해매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난영공원에서 길을 잃고 산책을 하던 아주머니에게 길을 여쭈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내 여행중 본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해주셨다.

"바로 저 아래 보이는 건물이에요, 가서 좋은 구경 많이 하고 오세요."

존댓말까지 써주시며 안내를 해주셔서 무척 고마웠다.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가타부타을 떠나서, 목포의 기둥이었던 김대중의 발자취를 본 것 같았다.

미리 이야기 하건데, 나는 구미를 방문할 예정이다.

예측하는 이유가 있다면, 맞다. 박정희의 도시가 내뿜는 기묘함을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어떤 아주머니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길을 알려준다면,

나는 박정희를 비웃을 수는 있어도, 그 아주머니를 비웃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미스 프레지던트라는 영화를 보고 시작된 물음은 이제 나에게 답을 재촉하고 있다.


기념관에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이미 들어서기 전부터 가장 깊은 내용을 보았으니까.

기념관을 빠져나온 나는 시간이 겨우 12:30분밖에 되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이미 목포에서 볼 만 한 건 다 본 것 같아서, 여섯시에 출발하는 KTX를 탈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추가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결국 전라도에서 3일을 묵어야 하는건 똑같기때문에 포기했다.

대신 지도를 보니 북항이라는 곳이 보였다. 그래서 거기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정확히 두 시간 걸렸다.

직선으로만 가도 되는데, 나는 한번 본 길을 또 가는걸 싫어한다.

그래서 목포시청을 찍고 갔다. 지금 보니 직선거리로는 5.2km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북항도 시내도 딱히 볼 건 없었다.

중간에 시장 하나를 관통했는데, 거기서도 홍어를 판다는 점 말고는 말이다.

보름만 더 있으면 25이라고 늙었는지, 도저히 지쳐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숙소를 결국 또 일찍 잡기로 결정하고 목포역으로 다시 걸어왔다.


내가 고른 숙소는 목포역 인근의 노르웨이 게스트 하우스였다.

앞서 어제 점심을 고른걸 보면 알겠지만, 여기도 싸서 선택했다.

내 인생 첫 게스트하우스인데, 무난한 가격에 무난한 시설인 것 같다.

여기어때에 달린 평에는 춥다는 말이 있었는데, 확실히 공기가 냉하긴 하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서 생긴 외풍같았다. 별 수 없지.

한 시간 반 가량을 쉰 5시 40분,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결 공기는 차가워졌고 15분을 넘게 걸어야 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선택한 저녁식사 장소는 동북음식점이었다.

여러 백반집을 확인했지만, 여기가 가깝고 저렴하고(₩8,000) 혼밥이 가능했다.

사실 여러 이유를 제치고 홍어회가 몇점 나온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이번 여행 들어(이틀밖에 안 됬지만) 가장 성공적인 식사였다.

인터넷과 귀동냥으로 전라도 밥상이 캐쩐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반찬의 가짓수만 많은게 아니라, 그 질이 모두 빠지는 곳이 없었다.

나는 결국 살다 살다 처음으로 공깃밥을 추가했다.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 그리고 좀 있다가 생선 한 마리가 뒤늦게 구워져나왔다.


내일 아침은 팥칼국수를 먹으려 했지만, 기차시간과 오픈시간이 잘 안맞아서 포기했다.

대신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조식으로 간단하게 때우기로 했다.

목포여행은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추후에 다른 내일러들을 위해 일정을 정리할 예정이다.

2018. 12. 14.

내일로 -1일차, 담양

생각보다 빠르게 짐을 풀었다.

이게 다 내 아이폰의 베터리가 잡스의 영혼과 함께 사라진 탓이다.

미리 지도를 봐둔 덕분에 별다른 뻘짓 없이 모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았다.

예정한 기차가 광주역이 아닌 광주'송정’ 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안 건 장항선의 끝자락에서였다,

정작 그 기차도 내일로로 탈 수 없는 KTX였다는 사실을 안 것도 역시 장항선의 끝자락에서였다.

씨팔.


결국 예상보다 한 시간 느리게 광주에 도착했고, 담양에 도착한 것도 한 시간 넘게 늦은 한 시였다.

담양에 기대한 볼거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죽녹원과 메타세콰이어.

죽녹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볼거리는 한 가지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세콰이어의 풍성했던 잎사귀는 연말 폭탄세일이라도 맞은 것처럼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 사실 나는 죽녹원을 보기 위해 담양에 왔다.



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댓잎이 서로 부딪히며 사르르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녹음을 해봤지만, 결과물은 썩 감동적이진 않았다.

녹음기도 사진기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실 편안하게 대나무를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은 안됬다.

날씨는 추웠고, 경사는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천원씩이나 내고 갈만큼 아름다웠다.

담양을 먹여살리는건 두 종류의 나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죽녹원에는 봉황루라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 1층에는 카페도 있었다.

아무리 관광지라지만 아메리카노 3.5는 좀 심한 것 같았다.

각설하고 2층에 올라가면 담양시내가 넓데데하게 내려다 보였다.


이름 모를 강가에 반사된 햇볕이 아름다웠는데, 차가운 바람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뒤돌아섰다.

죽녹원에 마련된 여러 산책로중에, 나는 선비의 길을 택했다.

다른 의미는 없었고, 그 편이 죽녹원을 삥 둘러 관광하는데 좋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이득충 루트인 셈이다.




선비의 길은 죽녹원의 가장자리를 훝는 길이어서 대나무 사이로 바깥 세상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이면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바깥 세상의 형상이 보이고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고요한 이곳에서 홀로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실은 커플이 많아서 홀로 숨을 쉬는 것은 나뿐이었다.

씨팔.


선비의 길을 따라 쭉 돌아간 죽녹원의 후문에는 전설의 연못, 승당수가 있었다.


앞의 푯말에는 1박 2일 촬영지임을 알리는 동시에, ‘이승기 연못’이라는 이명도 소개하고 있었다.

가지 않은 길을 따라 걷고 있으려니, 사유지라는 푯말이 보였다.

나중에 확인한 거지만 그 사유지에는 누군가의 묘지 몇 기가 있었다.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분묘기지권이란 땅주인에게는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허기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땅만 보고 걸었던 것 같다.

원래는 국수가 유명하다길래 먹으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좀 더 든든하게 먹어야했다.

때마침 죽녹원 앞에 죽통밥 정식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있었다.

관광지에서 지갑 여는 사람만큼 호구가 없지만, 나는 이미 블랙카우라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고른 음식점은 가장 싼 가격인 죽녹원 첫집 이었다.




할말하않.

저녁을 싼걸로 먹어야겠다.

아무튼 만원이었으니까 손해는 아니리라는 마음을 먹고 광주로 돌아왔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원시적인 방법으로 예약한 모텔을 찾아왔는데, 꽤 놀라운 곳이다.

우선… 티비를 키자마자 등장한 화면이 나에게는 세삼스러운 충격이었다.

왠 금발의 미녀가 탐스럽게 빅팜을 빠는 장면이었다.

아마 전에 이 방을 썼던사람의 취향이었나보다.

두 번째로는 방에 있던 자판기였는데, 파는 품목중 몇가지가 눈에 띄었다.

진동 에그나 진동 링을 팔고 있었다. 거북굿샷은 내가 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여긴 대실 전문인가보다.

아니면 ‘여기어때’라는 어플이 나같은 아싸가 쓸 어플이 아니었던지...

아쉽게도 주변에 마땅한 갈 거리가 없었다.

대인야시장은 내일 밤에 열고 양동시장은 내일 아침에 갈 꺼니까.

오늘 밤은 영화 틀어놓고 가져온 책을 읽어야겠다.

내일로 -프롤로그

왜, 그런 농담 있지 않나?

어릴 때에는 돈이 없고
젊을 때에는 시간이 없고
늙은 후에는 체력이 없다고.

공교롭게도 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진 2018년 겨울의 어느 날, 나는 고생을 사서하기로 했다.


사실 여행이라는게 우리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진 못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커뮤니티에 글 쓸거리 한 두 개가 늘어난다던지, 못 가봤던 곳에 가본다던지.

기껏해야 각지의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올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존나 남는 장사인 것 같다.

내일로를 판매하기 시작한 11일 이후부터 커뮤질을 하는 오늘까지, 멀쩡한 일정을 짜낸 적이 없다.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하루 앞 둔 오늘. 개추운 바람소리가 창밖을 때린다.

여행전야.

단톡에서 나를 비웃던, 지금도 비웃는 이들에게 패드립을 달지 않았다.

내 사주팔자에 객사(客死)가 있는지 없는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가자, 내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