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6.

내일로 -3일차 보성, 순천.

아침이 새초롬하게 밝았다.

나는 토스트를 먹으며 창 밖의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그쳐가는 것 같았지만, 여행객을 심란하게 하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이 부족해서 어제 남긴 새우바게트를 먹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하루 지난 바게트는 맛이 없었다.

티백녹차를 마시며, 나는 여행 3일만에 처음으로 일정을 완성했다.

그리고 담양에 들릴 때부터 일정이 어그러졌다는것도 알았다.

이 여행에는 문제점이 네 가지가 있었다.

1. 담양에 들리겠다는 포부
2. 보성에 들리겠다는 희망
3. 구미에 들리겠다는 욕심
4. 저 세 가지를 기어코 하겠다는 호구

만약 담양, 보성, 구미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정동진과 도라산역에도 가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보성행 기차에 오르기 전에 다시 코롬방제과를 들렸다.

보성에 이름난 음식점을 찾지 못했다. 끽해야 녹차 삼겹살 같은거나 팔테지.

에플 파이(₩2,000)와 딸기쨈빵(₩1,200원)을 점심대용으로 샀다.

그리고 목포를 떠났다.


보성에 들릴 목적은 당연히 녹차밭이었다.

정식 명칭은 대한다원인데, 녹차밭 뿐만이 아닌 조경도 꾸며놓았다.

입구의 삼나무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나무와는 다른 깊이감을 주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보니 왼편에 작은 녹차밭이 보였다.

입장료는 내일로 할인을 받아서 3,000₩이었다.

내 발길이 먼저 닿은 곳은 대나무 밭이었다.




죽녹원 못지 않은 빽빽한 맹종죽이 나를 반기어주었다.

만약 담양과 보성을 들리는 계획에 일정이 촉박하다면 보성만 골라도 될 것 같다.

대나무 숲을따라 좌측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다원이 나왔다.


양질의 찻잎이 든 티백 하나가 ₩2,000이었는데, 세 번 우릴 수 있었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지라, 차의 급을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린다.

다만, 상당히 고소하고 은은한 감각이 꽤 오래 남았던 것 같다.

부득이한 사정이 겹치고 겹쳐, 대한다원의 오른편은 감상하지 못했다.

가장 급한 사정은 다시 시작된 빗방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비는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오전에 사온 빵 두 게를 꺼냈다.


살면서 사과 스프레드가 아닌, 진짜 사과를 썰어넣은 에플파이는 처음먹어봤다.

두 개를 사왔어야 했다.


딸기쨈빵은 평범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 가격에 차별화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행에 지친 나에게 딸기쨈의 단맛은 황홀하게 다가왔다.


순천에 도착하기 전, 나는 두 갈래 길에 섰음을 알았다.

1. 오늘 순천만 정원을 가고 새벽기차로 부산행

2. 내일 순천만 정원을 가고 저녁은 여수, 부산은 내일 점심.

어느쪽을 골라도 일정에 큰 무리가 없었다. 여수 열차 시간이 딱 떨어지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수엑스포는 이미 다녀왔었고, 그동안 썰로만 전해들은 붓싼에 기대가 큰 지라 1안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두 선택지 모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겨울에 순천만 정원을 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매점들은 동절기 폐업중이었고, 꽃은 있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남은 시설들도 군데 군데 보수공사중이었다.

때마침 내렸던 비로 일부 구간은 입장이 통제되기까지했다. 판이 아주 이쁘게 돌아갔다.

두 시간동안 겨우 건진 사진들과 짤막한 설명을 남기며 정원이야기는 줄이겠다.

 이탈리아 정원- 내가 아주 좋아하는 양식이다. 단적으로 겨울 순천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호수공원과 언덕- 비가와서 언덕의 출입은 통제되었다.


프랑스 정원과 달- 멀쩡한 건물이 있었지만 덕지덕지 붙은걸 숨기기 어려워서 이거만 찍었다.


꿈의다리에서 바라본 강- 창문틀이 구형TV인게 재치있어서 찍었다.


한국정원의 산책길- 이런 길이 내 사진 취향이다.


한국정원의 한 가옥- 폰을 거의 물가에 닿을 듯 내리고 찍었다.


나는 완전히 지쳤다.

두 시간이나 되는 강행군과 추위로 내 동반자인 아이폰은 또 뻗어버렸다.

더욱이 아침과 점심을 빵으로 때운탓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김치남 그 자체인 나는 뜨신 국물이 안 들어가면 배거 너무 허전하다.

최소한 빵이라도 뜨셧어야 했는데, 식사가 멀쩡하질 않았다.

나는 완전히 지쳤다.

그나마 버스가 10분 안에 와준 것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내가 고른 저녁집은 순천역 인근의 청춘창고였다.

빈 농협 창고를 개조해서 문화 및 푸드코트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 3일간의 여행동안 청춘창고가 가장 부러웠다.

서산에는 문화잇슈라는 단체가 비슷하게 활동중이긴 하지만, 훨씬 좋아보였다.

아마도 그건 유동인구의 차이때문일 것이다. 서산은 관광객이 오기 어려운 곳이니.

아쉬운 마음을 다시 잠재운 것은 배고픔이었다. 맞다, 저녁먹으러 왔지.

여러가지 점포가 있었는데... 그래, 국물요리. 맞는 말이긴 한데...

사케동이 매일 15그릇 한정 판매중이란 글을 보고 눈이 돌아갔다.


뒤가 좀 허전해보인다면 눈썰미가 뛰어난 것이다. 배고파서 사진찍는걸 깜박하고 두 수저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비교하기엔 어렵지만, ₩8,000치고는 혜자같았다.

2층에는 공예품을 판매하는 점포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 취향들이 아니었다.

숙소는 역전시장의 길건너 게스트하우스

앞선 내 소비패턴을 보면 알 수 있듯, 가장 쌌다.

시설도 무난하고 다 좋은데, 콘센트가 좀 쉽게 빠져서 불편했다.

그래도 글 쓰는 지금까지는 6인실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있는걸 봐서, 나만 6인실을 골랐거나 내 앞에서 6으로 나누어 떨어졌나보다.

내일 부산으로 가려면 6시에 일어나야 했는데, 피해 줄 일이 없어서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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