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7.

미니멀라이프는 선(Line)이 아니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고해서 당장 집안에 있는 물건과 가구를 죄다 버리고 텅빈 방에서 수저 한 쌍 손에 들고 하는 명상은 미니멀라이프라기보다는 정신과 통원치료를 시작하기 좋은 계기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하여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만년필을 쓴다. 병에 만 원 하는 잉크를 리필해줘도 시간이 지나면 마르는데다 가끔씩은 미지근한 물로 청소도 해주어야 하는데, 이지랄을 하느니 차라리 플러스펜 한 자루를 들고 다니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년필의 필기감을 사랑한다. 닙이 종이를 긁으며 잉크를 남기는 소리는 내 창의성을 살살 자극할 뿐더러, 내가 꼴에 글 쓰는 취미를 가졌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만년필은 상술한 지랄맞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 행을 면했다.

그 외의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버렸다. 미니멀라이프의 역사적 사명을 지키기위해 버린 것은 아니다. ‘좁아터진 집구석 청소거리만 늘리느니 버리고 말지’ 싶어서 버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이놈의 돌덩이 먼지 닦아주느니 버리고 말지’ 라고 말한 이유가 있는 샘이다.

한바탕 생난리를 피우고 난 뒤, 확실히 집안은 깔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180도로 바뀌었냐면 그건 또 아니올시다. 깔끔해진 집 안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원래 잘 쓰지도 않던 쓰레기 조금 지웠다고 해서 또다른 삶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럼 도당체 고것이 청소랑 다른게 뭐시기여?’ 라고 묻거든, 미니멀라이프는 물건에 대해 한가지 질문을 더 던지게 한다:과연 이것이 나에게 먼지 수집기 이상의 가치가 있는가? 그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예전 같으면 샀을 물건도 사지 않게 된다.

그 결과는 쾌적한 생활공간과 두툼한 지갑으로 돌아온다. 쾌적한 생활공간은 나에게 두 다리 뻗을 여유를 주고, 두툼한 지갑으로는 주로 치킨을 사먹는다. 치킨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멀라이프 없이는 이렇게 두 발 뻗고 닭다리를 뜯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반쯤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만족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닭다리 한 조각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린 남은 여유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반드시 고상한 일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면 충분하다.

미니멀라이프는 규약이 아니라 행복해 질 수 있는 가능성중 하나다. 그 과정에서 사복의 제복화니 하는 것들을 굳이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맹목적인 행동은 행복이라는 본질을 감추고 만다. 미니멀라이프에 얽메여 행복까지 버리지는 말자.

오히려 차고 넘치는 물건이 자신에게 행복을 준다면 구태여 자신의 손으로 불행해 질 필요는 없다. 매일 밤을 ‘아 씨... 살까, 말까?’ 같은 고민으로 지세운다면, 그냥 속 시원하게 사버려라. 어지간히 필요했으니 그러지 않았겠나?

미니멀라이프는 선(Line)이 아니다.

중대한 결심과 획기적인 변화를 안고 넘어갈 필요도 없고, 그어진 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내가 편하자고 하는 짓은 내가 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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