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2.

분노세대를 읽고

이 르포타주는 게임스톱 사태의 한 가운데 있던 월스트리트벳츠라는 서브레딧의 흐름을 다룹니다.

원제는 더 트롤 오브 월스트리트입니다. 월가에는 늑대도 살고 트롤도 사는데 사람은 안 사는 모양입니다.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걸림없이 술술 흘러가는데, 눈에 밟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셀타령이에요.

‘여러 세대에 걸쳐 인간 사회에서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차지했던 젊은 남성들이 언제부터인가 측정 가능한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뒤쳐지거 있다는 증거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로 월스트리트벳츠의 탄생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은 르포타주로서는 주제에 맞지도 않으며, 학술적으로는 담론이 미약합니다.

특히 제이미 라는 사람의 알콜중독 원인을 ‘혈기 왕성한 젊은 남성의 몸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충동을 어떻게든 잠재우려 노력하는 과정’ 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적대감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제이미는 글 초반에서 밝히듯 매너리즘한 업무와 회색빛 일상을 단조롭게 오가고 있었어요. 추후 알중치료소에서도 ‘구체적인 트라우마나 촉매를 찾을 수 없었‘ 다고 작가가 말하고 있고, 제이미는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맥시코시티로 떠나며 알콜 이야기는 사라집니다. 알콜중독은 멎어가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의 항상성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어쩌면 이 사례, 그러니까 공백에 찾아온 알콜과 같은 메커니즘은 월스트리트벳츠와 게임스톱 사태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쥐 공원 실험과 마찬가지로요.

그것을 위해서는 책에서 전반적으로 제시되는 월가와 헤지펀드에 대한 적대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작가가 작중에 언급했듯 “월가에 대한 불신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2008년도에 20세기가 막을 내리면서, 좁게는 미국인 넓게는 전세계인의 삶에 비가역적인 상처가 남았습니다. 원인을 제공한 월가는 Too big too fail을 내세워 살아남았고, 사회는 너무 작아서 실패해도 되는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집에서 내밀렸습니다. 챙긴거라곤 체계에 대한 불신과 배신감 뿐이겠죠. 공교롭게도 오늘날 인디언들은 ‘보호구역’ 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 알콜중독이 많은 이유는 그저 그네들 특유의 ’끓어오르는 충동‘ 뿐이겠죠.

이렇게 붕괴된 중산층의 삶은 공백이 되었습니다. 반지성주의, 트럼프의 약진, 대안우파와 음모론자들의 서식처입니다. 월스트리트벳츠는 그저 발현된 어느 지점이었을 뿐이죠. 아마 폐쇄시켰어도 게임스톱사태는 유사하게 일어났을겁니다.

공백이 된 페트리 위에 곰팡이는 피어났고, 촉매가 된 것은 게임스톱에 대한 헤지펀드의 공매도였습니다. 매우 반응성이 좋은 촉매였지요. 게임스탑은 어린시절의 좋은 감성을, 헤지펀드의공매도는 그걸 날려버린 나쁜 기억을 떠올렸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월스트리트벳츠는 헤지펀드 여럿을 파산시킵니다. 그중 하나가 이를 시장교란행위로 SEC에 고발하면서 책에서는 이 이슈를 마무리짓습니다.

하지만 되묻고 싶습니다. 왜 이게 시장교란행위인가요? 월스트리트벳츠의 행동이 다수의 행동이기에 부당하다면, 헤지펀드의 행동은 소수의 행동이기에 정당한가요? 이러한 불공정이야 말로 사회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악덕을 불러왔던 원흉입니다.

로빈후드는 그러한 악덕에서 큰 돈의 냄새를 맡습니다. 증권이라는 개념을 마권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매수버튼을 뽑아버리면서 개미들에게 추크츠방을 강요했습니다.

서브프라임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아무에게나 대출을 해주고자 하는 금융기관의 탐욕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그 사후처리가 공정했더라면 지금 이 세대는 분노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는 트롤로 가득차있고, 메인스트리트는 여전히 비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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