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갈드컵 금지
세상에 가장 작품을 많이 남긴 화가는 누구일까? 14만여점의 작품을 남긴 파블로 피카소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남긴 화가는 누구일까? 이제부터 파블로프도 기겁할 개싸움이 시작될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 정렬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정량적 기준과 정성적 기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정성적 기준으로는 정렬할 수 없다. 그러니 마엘과 베르소는 붓을 놓고 이 게시글을 떠나주길 바란다.
1. 클레르 옵스퀴르
이 게임의 제목은 명암의 대비를 나타내는 미술 기법에서 왔다. 여기서부터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제작진은 정말 훌륭한 미스디렉션을 통해 제목의 의미를 잊게 만들었다.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어둠 없이는 빛도 힘을 잃는다. 하지만 화려한 뤼미에르와 슬픈 소피의 죽음을 통해 어둠으로 인식되는 페인트리스는 클레르 옵스퀴르의 한 축이 아닌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런 연유로 3막이 시작되며 나는 놀라지 않았다. 빛이 어둠을 잃었지 않는가?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클레르 옵스퀴르의 의미는 빛과 어둠이 대등하기 보다는 착취적 관계임이 밝혀진다. 어둠은 단지 색체를 강조하기 위한 객체에 불과했다. 실제 삶이라고 여겨진 회화 세계가 데샹드르 가문의 갈드컵을 위한 어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 마엘엔딩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어둠은 의도적으로 배치된 객체이다. 그래서 엔딩은 플레이어에게 묻고있다: “정말로 이 어둠뿐인 뤼미에르가 좋은가, 아니면 불에 그슬렸지만 빛의 도시가 좋은가?“ 마엘엔딩은 어둠을 선택한다.
베르소의 영혼은 영원히 고통받는다. 이는 게임의 시대적 배경인 벨에포크 시대와 연결되어있다. ‘아름다운 시절’ 로 기억되는 서유럽의 찬란한 삶은 사실 식민지 착취와 불평등이 있었기에 강조되는 삶이었다. 이것이 바로 클레르 옵스퀴르다.
한편 이 엔딩에서는 어둠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클레르 옵스퀴르에서, 어둠뿐인 그림은 결국 아무런 색체도 남기지 않는다.
3. 베르소엔딩
반면 베르소엔딩에서는 불에 그슬린 빛의 도시로 돌아가며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마엘엔딩이 결국 어둠에 침식당하는 내용이라면, 여기서는 결국 빛에 침식당한다. 이 게임이 갈드컵을 불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용도를 다한 어둠은 결국 빛을 위해 폐기당한다. 뤼미에르는 원망속에 사라진다. 쾌락을 위해 낳은 생명을 속죄하기 위해 낙태할 수 있는가? 하지만 뤼미에르의 삶 역시 의도하진 않았지만 베르소를 착취한 것이었다. 이야기속의 이야기, 미장아빔이다.
그렇지만 의문은 계속된다. 뤼미에르는 베르소를 착취했고, 데샹드르는 뤼미에르를 착취했다. 우리는 데샹드르를 착취하지 않았는가?
4. 갈드컵 금지
클레르 옵스퀴르란 결국 착취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엔딩은 플레이어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식으로 착취하기를 바라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는 하나의 행복과 상응하는 비통이 남기에 어느쪽이든 씁쓸한 맛을 남길 수 밖에 없다. 의도된 어둠이다.
하지만 단색의 화폭은 쉽게 잊혀지고, 대비된 색체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성공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