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5.

합구필분 분구필합

오늘날에도 삼국지연의가 고전으로 남아있는 까닭은 바로 훌륭한 문체에 있을 것이다.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십팔사략과 수호지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수천년 전, 나관중이 적어내린 이 구절은 오늘날 곱씹을 맛이 있다. 합구필분이라 하였으니, 오랫동안 합해져 있던 것은 반드시 나뉘게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짧은 단어를 혀에 굴리며 삼권분립의 맛을 느꼈다.

태고적에는 모든 권력이 지배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체제의 무능은 문명의 진보속에 모습을 드러냈고, 권력은 필연적으로 나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1688년 권리장전,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을 계기로 권력은 완전한 분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국가에는 세 가지 권력이 있다고 주장했다-입법권, 집행권, 재판권. 그가 말한 '재판권이 입법권이나 집행권과 분리되지 않는다면, 자유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는 확언은 현대문명으로 나아가는 청사진이었다.

고대 로마에는 이러한 청사진이 없었고, 그들은 삼두정을 도입했다. 삼권은 분리되지 않았고 그냥 지배자가 세 명이었다. 옥좌 하나에 세 엉덩이를 두었으니 결국 파멸하고 말았다. 오늘날에는 중국마저도 삼권분립을 주장하나, 그것은 공산당 우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식적 분립에 그친다.  

이것이 몽테스키외가 발견한 사실이었다. 권력은 단순히 분리될 뿐만 아니라 서로 견제해야 한다. 국가 작용의 핵심적인 세 부분은 반드시 나뉘어야 하며, 분립하더라도 같은 지휘봉 아래에 있다면 분립의 벽은 행정상의 파티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독재자들은 그런 지휘봉을 차지하려 들었다. 히틀러내각의 민족사회주의노동자당은 1933년 총선에서 압승했음에도 단독과반에 이르지 못하자 수권법을 통과시킨다. 행정부에 입법권을 부여하는 내용이었다. 용도를 잃은 나머지 정당은 전부 해산당한다.

이듬해인 1934년, 히틀러는 장검의 밤을 통해 돌격대를 몰살시켰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기소할 수는 없었다. 이미 사법부는 판단할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법학자가 "정치적 결단은 법적 정당성보다 우위에 있다" 며 법적인 근거를 제공하기에 이르른다. 히틀러는 지휘봉을 차지한다.

이것이 삼권분립의 퇴행이며, 몽테스키외가 경계한 것이다. 결국 독일인들은 자유를 잃었고 세계는 교훈을 얻었다. 분립된 삼권이 가까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작은 균열조차 분립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모름지기 정복은 나누어 이루어지며 풀은 한 줌씩 뽑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허나 나관중은 또한 분구필합이라 하였으니, 백년 조금 부족한 시간이 천하에게는 충분히 길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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