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8.

내일로 -5일차 강원, 그리고 집으로.

내가 처음 안 사실이 있다.

기차는 밤에도 객실에 불을 꺼주지 않는다.

다행히 옆에 사람이 없어서 패딩을 이불처럼 덮고 잤다.

세 시간이라도 쪽잠을 잤고, 카페인 도핑까지 한 덕분에 좀 괜찮아졌다.


나는 정동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에서보다 북두칠성이 훨씬 선명했다.

하지만 정동진은 추웠고, 느긋하게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볼 여유같은건 없었다.

해가 조금 떠오를 6시 30분 무렵까지 역사에서 뉴스를 보았다.

슬슬 엉덩이가 간지러워서 나가본 플랫폼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동남쪽의 바닷가에는 자연이 만든 그라데이션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 해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북행 열차가 도착해버렸다.

시간도 촉박했을 뿐더러, 구름마저 짙어서 기다렸어도 이쁜 사진은 못 건졌으리라.

여명은 쏜살같이 사라지고, 산맥에는 햇살이 드리웠다.

'강원도 여행은 이걸로 땡' 이라고 해도 될정도로 산맥이 아름다웠다.

도대체 어디를 사진을 찍어야 할줄 모를정도로 장관이었다.

몇 장 찍어는 보았지만, 그 장대함을 담을 수는 없어서 차마 올리지는 않겠다.


사북이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많지만 강원랜드라 하면 모르는 이가 있겠는가?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점찍어둔 곳이다.

문제는 기차에 내리면서 장갑을 두고 내렸다는 것이다.

다시 기차로 돌아가면 장갑을 되찾을 수 있지만, 강원랜드 구경은 물건너 간다.

그리고 사북은,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점찍어둔 곳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갑은 오늘 여행이 꼬여버릴 것이라는 복선이었다.


도시에 가득한건 모텔과 안마방, 전봇대에는 사체 명함이 가득했다.

사북인 것이다.

나는 택시를 잡아 강원랜드로 향했다.

기사님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이런 데, 자주 오지 말아요."

그 씁쓸한 목소리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복마전으로 사람을 날라야 하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강원랜드에는 사람이 정말 가득했다.

아침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거려서, 초행인 내가 길을 잃지 않을 정도였다.

내 대기번호는 4100대였다.

아마 0번부터는 사전예약자, n천번 부터는 현장 예약자였나보다.

카지노가 여는 10시까지 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주름을 가릴 정도로 분칠을 한 할머니, 수염을 깍지 못 한 남자.

ATM기에서 5만원 뭉텅이를 꺼내는 아줌마, 창 밖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던 나는 결국 카지노 안에도 못 들어가봤다.

음료수 한 잔 마시고 천원짜리는 칩으로 바꿔오려고 했는데, 애석하다.


다음 행선지는 제천이었다. 딱히 볼 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환승때문에 향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충북 한 번 밟아본다는 의미가 있기는 하다.

때마침 5일장이 열렸기에, 남은 시간은 구경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뭐... 별로 볼 건 없었다.


앞서 내가 잃어버린 장갑을 복선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복선은 잊어버릴 때 쯔음 뒤통수를 크게 때린다.

[제천 - 조치원] [조치원 - 천안] 열차를 환승할 여유가 3분이 있었습니다.

없었는데요...

5일동안 한 번의 지연도 없던 코레일이 가장 중요한 환승에서 지연을 때려버렸다.

눈 앞에서 천안행 열차가 저멀리 사라져갔다.

만약 내가 아까 장갑을 따라 사북을 포기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고 쌩돈 2만원도 안 나갔을 것이다.

허미 쒸펄...


나는 결국 온양온천을 포기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큰 일정은 내 예상대로 흘러갔지만,

작은 일정은 멀쩡하게 흘러간 일정이 없다.

최종 일정으로 못박은게 다섯 개는 훨씬 넘는데, 결국 그대로 흘러간건 몇 개 되지 않는다.

디자인회사의 숙명이 이런걸까?


어떻게 고향에 도착하기는 했다.

다행히도 자전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이상이 있다면 하늘에 있었겠지.

내가 집에 반쯤 도착했을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장갑!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던지고 나서야 집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샤워를 마치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다시는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다.

...

나중에 아일랜드 가봐야겠다.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