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5.

모서니

“너희들, 모서니라고 들어봤어?”

그것이 내가 시작한 무서운 이야기의 첫 운이었다.

천둥이 치는 여름밤, 자취방에 모인 이들의 놀거리로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이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귀신이 온다.’ 라는 말도 있지만, 건장한 20대 청춘에게는 공염불이었다.

촛불을 밝히고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끝마쳤지만,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분위기를 살릴 마지막 기회가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런 건 처음 들어보는데.”

“맞아, 내가 무서운 이야기는 꽤 좋아하는데 모서니는 처음 들어.”

내가 땐 첫 운을 듣고, 다들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도 해. 나도 10살 때 처음 겪은 일이거든.”

“이거 괜히 지어낸 이야기 아니야? 다른 거 없어?”

“초치지 말고 있어 봐. 진짜 무서운 이야기인 데다가, 내 경험담이니까.”

나는 내 앞에 있던 물이 든 잔을 비웠다. 길다면 긴 이야기니, 미리 목을 적셔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빈 잔이 된 종이컵은 수연이가 가져가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여간 집주인 유세 부리긴.

“흠... 그러니까, 내가 10살 때 초여름이었어. 해도 빨리 뜨고, 매미도 새벽부터 울어 재껴서 아침잠 즐기기는 그른 시절이었지.”


나는 대충 물로 세수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홉 시쯤 일어나서 시리얼로 아침을 때웠겠지만, 오늘은 갈 곳이 있었다.

어제 산 잠자리채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실험해 볼 이유도 있었고, 남들 다 기르는 사슴벌레를 나도 한번 길러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그 바닥이 꽤 촌구석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10분만 나가도 비료 냄새가 가득했으니, 조금만 더 나가면 사슴벌레 잡을 곳은 사방에 널렸었다.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 먹는 순간에도 바깥 생각뿐이었고, 살금살금 나가다 붙잡혀서 이를 닦는 중에도 바깥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치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자전거에 올랐다. 가방에 꽂아놓은 잠자리채가 깃발처럼 멋있게 휘날렸다.


수연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좀 지루한데, 이거 무서운 이야기 맞아? 다른 이야기는 없어?”

“맞으니까 가만히 있어 봐. 원래 공포영화도 앞에 20분은 다른 이야기만 하잖아.”

나는 단박에 수연이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침이라 길에 차가 없더라고. 뭐, 원래 외진 길이긴 했지만 말이야. 다만 그 망할 안개가 존나게 꼈지.”

성윤이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이제 좀 분위기가 사네.”


인근의 저수지에서 피어오른 안개는 무진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꽤 짙어서 정오가 돼야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서 핸들에 달린 라이트를 켰다. 싸구려 중국제 라이트는 고작 내 앞길을 밝히는 게 전부였다.

안개에 서린 습기들이 빠르게 내 몸에 달라붙었다. 춥지는 않았지만, 살갗은 닭처럼 돋아났다.

집에 돌아갈 때 즈음 되면 햇살을 원망하겠지만, 지금만큼은 해가 좀 더 강렬했으면 좋겠다.

목적지인 산에는 가까워졌지만, 안개는 사라질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산기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메어놓았다. 등 뒤로는 논밭을 뒤덮고 있는 안개의 파도가 보였다.

안개를 뒤로하고 산줄기를 타고 올라갔지만, 잠자리는 고사하고 사슴벌레 역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산을 타고 올라갔지만, 오히려 안개는 짙어만 질 뿐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그때쯤 깨달았다.

매미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른 아침부터 울어 재낀 매미가 왜 울지 않는 걸까?

무언가 잘못됐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나가야 한다.

나는 어제 산 잠자리채도 내던지고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 발목을 접지를 뻔했지만, 속도를 줄일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자전거는 내가 받혀둔 곳에 그대로 있었다.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맞추는 손이 달달 떨렸다.

자꾸 번호키 하나가 중간에 걸려서 빠지려고 하지 않았다. 미치는줄 알았다.

살면서 자전거로 그런 속도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이었지만, 나는 곡선 길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서 차가 튀어나왔다면 분명 사고가 나겠지만, 어쩐지 차가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한 시간은 달렸지만, 나는 아직도 안개 속이었다. 허벅지는 저리고, 입은 타들어 갔다.

습기가 가득 찬 안개 속에서 땀은 식지도 못하고, 계속 펑펑 쏟아져 나왔다.

초여름의 더위는 내 목을 졸라왔지만, 여전히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있었다.

그때 저 멀리에서 팔각정이 보였다. 흔히 논밭 옆에서 볼 수 있는 시설물이지만, 나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본 것이다.

더 달릴 재간도 없었다. 귀신이 나를 잡아가더라도, 숨이라도 돌릴 생각으로 팔각정에 멈추어 섰다.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옛날 한복을 걸친 사람이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학생은 이런 곳에 처음 오는가?”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했다. 나는 그가 깔고 앉은 돗자리로 다가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학생은 어찌도 이리 깊이 왔는가?”

“누구세요?”

그는 양은그릇에 담긴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리고 나서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는 학생은 누구인데, 이 깊은 곳까지 왔는가?”

나는 그 사람이 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세어 나왔다.

흑흑거리고 있으려니, 그는 다가와서 나와서 말을 이었다.

“이제 이 막걸리를 마시게.”

한복을 걸친 이는 나에게 막걸리가 담긴 양은그릇을 건네었다. 나는 그릇을 받아들었다.

막걸리의 색은 오묘하게 흔들리는 불빛과도 같았다. 내 시선을 옮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양은그릇을 입에 대자, 냉장고에서 갓 꺼낸 것 같은 차가움이 입술에 맴돌았다.

바깥에 있던 그릇 같지가 않았다.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에 다시 입술을 떼고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세요?”

아무 답변도 들리지 않아서, 나는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던 한복을 입은 아저씨는 없었다.

흰자도 없이 검게 타버린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웃고 있는 귀신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양은그릇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그 귀신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입에서는 서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마셔... 마셔... 마셔...”

그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목은 점차 길어지고 창백한 얼굴은 나에게 다가왔다. 점점 다가온다.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이 나왔다. 이 모든 게 꿈인 것 같았다.

“아아아악!!”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몸을 일으키니, 여전히 팔각정이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해는 중천에 올라 안개는 사라졌고, 저 멀리에서는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내가 알던 세상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꽤 무서운 이야기긴 한데, 너무 정형적이다. 그래도 수고했어. 과일이나 먹어.”

정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사과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를 않았어.”

다들 집중해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집에 돌아오고 엄마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 정말이지 무서운 경험을 했다고.”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소름이 돋았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 거야.”


“진영아, 엄마 말 잘 들어... 오늘 밤은 다른 곳에서 자야 해.”

엄마는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전혀 농담 같지가 않았다.

“엄마, 왜?”

엄마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음. 오늘은 탬플스테이를 하러 갈 거야. 다녀오면 돈까스 사줄게.”

그런 단순한 얼버무림에도 나는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린아이였다.

물론, 다음 날 아침에 돈까스를 사주셨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질질 끌리듯 엄마에게 손목이 붙잡혀 차로 끌려갔다.

조수석에서 이상하게 졸음이 막 쏟아지는데, 엄마는 나를 때려가면서 자지말라고 외쳤다.

어릴 때에도 9시가 넘어가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30분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어느 작은 암자였다. 대나무를 세운 걸로 보아 무당집이었나보다.

엄마는 나를 번쩍 들어서 양팔로 안았다. 그리고 암자 안으로 뛰어가려니, 누군가 안에서 문을 열고 소리쳤다.

“누가 그런 걸 들고 오는 거야!”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무당의 행색을 한 여자였다. 졸음이 쏟아지는 내 눈으로도 강렬한 눈동자가 보였다.

“언니, 언니. 우리 애가 모서니에 씌었어.”

언니라고 불린 무당은 혀를 끌끌 차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너,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고작 아침에 일어나서 사슴벌레를 잡으러 나간 꼬마는 졸지에 대역죄인의 신세가 된 것이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사슴벌레, 안개, 매미.

그리고 막걸리를 건넨 아저씨까지도.

“재수가 없어도 단단히 없었네. 부정도 안 탄 놈이 모서니에 씌고.”

무당은 그렇게 말하고 엄마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엄마에 실려 안으로 들어갔다.

암자 안에는 무섭게 생긴 그림과 과일들로 가득차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무당집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조금 달랐다. 방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깃발은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부적을 쓸 테니까. 그때까지는 네가 아들이 졸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당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이상하게 안심이 되는 목소리였다. 나는 문뜩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때마다 엄마가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마 멍이 졌을지도 모르겠다.

“됐다. 잘 써졌다. 이제 이걸 입에 물어라.”

무당은 그 잘 써졌다던 부적을 잘 뭉쳐서 내 입에 넣었다.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이제 너는 잠이 들 거다. 그럼 꿈속에서 아까 그 귀신을 보게 될 거다.”

그 소리를 듣자 물밀 듯 밀려오는 잠이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그 얼굴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절없이 뒤이어 오는 졸음에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절대 모서니가 주는 음식을 먹어서도, 마셔서도 안 된다. 온갖 방법으로 널 속이려고 할 게야.”

점점 무당의 목소리가 흐릿해진다. 도저히 졸려서 참을 수가 없다.

“부적이 있는 동안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겠지만, 침에 부적이 녹고 나면 너 홀로 싸워야 한다.”

무당의 얼굴조차 똑바로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내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아프지도 않았다.

“그 전에 꿈에서 깨야 한다.”

그 마지막 한마디를 듣고, 나는 잠이 들었다.


“우와 이번 이야기는 좀 흥미진진한데?”

성윤이는 닭살이라도 난 듯, 팔뚝을 문질렀다.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만하면 무서운 이야기 1등 상은 네가 받겠네?”

정현이는 익숙하지도 않은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하지. 어디 인터넷에서 본 거랑, 내가 직접 겪은 실화랑 같냐?”

한참을 이야기하고 나니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물컵에 있던 물은 아까 마셔버려서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성윤이 허벅지 옆에 물병이 있었다.

“성윤아, 거기 물병 좀 줘봐. 후반전 시작하기 전에 목 좀 축이자.”

“어 여기 있어, 받아.”

성윤이는 나에게 물병을 건넸다. 물병이라고 해봐야 1.5L짜리 페트병이었다.

이미 각자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안 몇 모금씩을 마신 것인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내 종이컵은 아까 수연이가 버린지라, 나는 통을 들고 마실 생각으로 병뚜껑을 열면서 말했다.

“아무튼 말이야, 나는 엄청나게 당황했어. 세상에, 10살짜리 꼬맹이가 그런 일에 휘말릴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그래서 그 뒤는 어떻게 됐어?”

정현이의 다그침에 나는 검지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 뒤? 잠깐만, 입도 못 댔어.”

주말 드라마처럼 중요한 순간에 일부러 이야기를 끊었더니, 친구들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 찼다.

목을 학처럼 내민 친구들을 애태우는 것은 은근히 즐거운 것이다. 좋은 취미는 아니지만.

나는 천장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입술이 닿지 않도록 페트병을 천천히 기울였다.

그리고 그 물은 내 입에 투명한 유리창이라도 닫혀있는 듯, 튕겨 나와 내 목을 따라 흘렀다.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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