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발견자 포클레인기사 A씨
날씨는 뜨겁게 찌었지만 야속하게도 작업이 중단될 정도로 찌지를 않았다. 잠깐 동안 마음속으로는 기온이 조금만 더 올라서 오늘 하루 공치고 싶은 생각이 스쳤지만, 지난주 연이은 폭우로 한 주를 못 벌어서 가벼워진 지갑이 생각났다. 씨부럴, 추우면 추워서 더우면 더워서 걱정이구만. 머금은 물을 땅바닥에 뱉으며 삽을 내렸는데 내려가지는 않고 쿵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아마 또 큼지막한 돌이 나온 모양인데, 크기 여하에 따라 다르지만 뺑이의 수준은 달라지겠지만 이번건 좀 큰 돌인 것 같았다.
돌이 뭔가 이상했다. 멀찍이서 봐서 모르겠지만 새까만 평평한 판이었다. 희한한 생각이 들어서 포클레인에서 내려서 살펴보았는데, 더 이상했다. 아주 검은, 숯검댕이나, 검은색 물감보다도 아주 깜깜한 색깔의 판이었는데, 포클레인 삽으로 긁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스같은건 나지 않았다. 다시 올라타서 옆의 부분도 살살 파보았으나 그 판의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끄트머리는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뭔가 알 수가 없어서 땅 주인 B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B사장은 그 땅이 자기 고조할아버지부터 공터로 쓰던 땅인데 그런게 묻혀있을리 없다며 한사코 허튼소리라 일축하고 일이나 하라고 했지만, 결국 사진을 보고서야 5시쯤 한 번 보러 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한참동안 그 돌의 끝을 찾으려 땅을 파헤쳤지만, 사장이 올 때까지 그 넓은 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B사장이 온다고 바뀌지 않았다. 천천히 파기는 했다만 근 세 시간을 파헤친 넓은 구멍아래에 한 점 빛도 반사하지 않는 정말 무한한 검정색 판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림판으로 아래에 검은색을 뿌린것만같았다. 더욱이 지는 노을과 대비되어 그 검은색이 더욱 도드라졌다.
이튿날, 사장은 언론에 제보를 했다. 사진을 보고서는 나처럼 그림판으로 검은 색칠 한 줄 알았다던 기자도 실제로 와서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는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서 손으로 그 판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다가 얼떨떨해하며 취재를 끝마쳤다. 사장은 나에게 일단 저 돌판의 끝을 찾아보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돌판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기자 C
아침나절부터 후텁지근해서는 이대로 사무실에 눌러 앉고 싶을 무렵 웬 전화가 한 통 왔다. 자기네 뒷마당에 무슨 새까만 들판이 나왔는데, 이걸 제보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흑요석이나 나왔겠거니 하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이메일이 날아왔다. 구덩이에 그림판으로 바닥을 까맣게 칠해놓은 사진이었다. 미친놈이 아침부터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합성질로 장난질을 친다는 생각이 드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최대한 그 감정을 억누르며 전화를 끊고 의자에 기대었다. 그렇게 있노라니 문이 쾅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장 놈이 씩씩거리면서 들어오는 것 이었다. 염병, 빨리 껀수 하나 잡아서 도망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설사 그 껀수가 합성질로 한 장난 제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확실한건 그 보도는 합성이 아니었다.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검은 판이 진짜로 있었다. 성인 허리춤정도의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자 내가 허공을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완벽한 무의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럴 순 없어.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사진기 속의 악마가 바닥을 그림판으로 칠해놓은 것만 같은 사진이 나왔다. 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가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내 인생최고의 특종을 잡았다는 생각이 앞섰고 몸이 떨려왔다. 이거면 내 인생도 필 수 있다.
한 주가 지나고 그 기사는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네티즌들도 모두 그림판으로 조작된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제는 동영상으로 된 기사도 올려서 쐐기를 박았다. 어제는 나를 세 번씩이나 떨어뜨린 빌어 처먹을 메이저 언론사로부터 전화통이 불이 나더니, 오늘 오후에는 대학 연구실로부터 연락이 미친 듯이 걸려왔다. 이 답 없는 인생에 빛이 드는구나.
대학원생 D
지도교수 놈은 사람을 부려먹는데 에 특화된 새끼였다. 침대에 몸을 누이니 잠이 영 오지 않아 페북을 켜고 있으려니 어느 게시글이 보였다. 웬 구덩이인데, 바닥에 어떤 놈이 그림판으로 붓질을 해놓은 사진이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공사 중에 나온 새까만 돌판이란다. 시발 이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하여간 따봉충새끼들이나, 이게 좋다고 좋아요 누른 친구새끼나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재미도 없는 놈의 휴대폰을 발밑으로 던져버렸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던가. 출근하자 지도교수놈이 아침서부터 사전답사갈 짐을 싸서 오란다. 왜 나한테 또 지랄인걸까? 하여간 졸업만 하면 멱살 잡고 이 나라 떠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박사를 따지 못한 게 너무나 서글펐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조금 거리가 먼 산골이었다. 그리고 시발 세상에 몇 일전에 페북에서 본 그 새까만 너무나도 검은 돌판이 진짜 있었다. 난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진짜다. 후래쉬로 빛을 비추어보았지만 그 검은색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얼추 생각해보아 이 돌판은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것 같았다. 이건 도대체 누가 만든걸까?
한참동안 쪼그려 앉아 보고 있으려니 문뜩 방사능이 나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납판으로 만들어진 팬티도 아니었는데 대략 오센치 위에 둥둥 떠 있던 내 두 알덩이가 생각나서 몸이 오싹거렸다. 트렁크에서 급히 꺼낸 가이거 계수기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걸 보면 아직 쓰지 못한 두 친구지만 안전한 것 같아 기뻤다. 아니 그보다, 이건 도대체 뭘까? 이 흑색 판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고 완전 흡수함과 더불어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았다. 가지고 왔던 십자드라이버로 내려찍어 보았지만, 시월의 벼처럼 고개를 푹숙이게 되어서는 다시는 서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밭두렁으로 던져버렸다.
시료채취도 실패했고, 현미경으로 관측하는 것도 실패했지만 심장박동이 고동쳤다. 근 수개월 만에 학자로써의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나는 문뜩 확신했다. 이건 인간이 만든 게 아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더 커질 것이며, 분명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대려다 줄 것 이라고.
사장 B
그때 그 공터에서 검은 돌 판이 나온 이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메이저 방송 3사의 메인 뉴스를 꿰어 찼고,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대학 연구진이 연구를 요청했다. 구덩이 아래의 넓은 그 돌판을 테이프로 나누어 각 대학원의 연구진들이 눌러 앉았다. 생전 처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정도의 돈을 벌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기쁨에 구르고 있을 즈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정부기관에서 온 전화였다. 이 운석을 사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가격이 형편없을 뿐 더러 인근 토지를 헐값에 사겠다는 헛소리여서 바로 끊어버렸다. 그 다음은 각각 미국과 중국 쪽의 기업인지, 정부기관인지 모를 단체로부터의 전화였다. 미국 쪽에서 내 손자까지 낭비만 안 한다면 먹고 살만한, 나 같은 비교적 중산층은 꿈도 못 꿀 가격을 제시했다. 중국 쪽도 솔깃했지만, 미국은 시민권까지 제안해주었다.
망할 나라가 법을 내세워서 이 제안을 파토 놓기 전까지는 상상에 나래에 빠져있었다. 형사처벌 운운하는 관리 놈들을 담가버리고 싶었다. 그 엄청난 액수를 보다가 개 종이 쪼가리 같은 액수를 보려니 도저히 열불이 나서 잠이 오질 않았다. 억울해 죽을 것 만 같았다. 이후 연구진들까지 싹 쫓고 버티고 있으려니 이번엔 청기와 집에서 뒤쪽으로 연락이 왔다. 처음 입질을 준 미국보다는 혜택이 적지만 한국에서 사는데 불편함은 없을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도장을 찍고 계약서를 확인하고는 제주도 어느 전망 좋은 곳에 땅을 계약했다. 이제 내게는 저 검은 돌 판 보다도, 검은 돌섬이 더 가까워졌다.
포클레인 기사 A
그 검은 돌을 처음 발견한 덕택에 생전 처음으로 나랏일을 하고 있다. B사장은 땅을 국가로 넘기고는 한 몫 단단히 잡았는지, 제주도로 떠버렸다. 그런데 이놈의 땅은 파도 파도 그 끝이 나오질 않았다. 얼마나 땅을 파헤쳤는지, 아주 달에서 보면 한반도 허리춤에 골병이 들은 게 보일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흙더미를 잘라냈을까? 나는 그제야 이게 판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평평한 판이라고 부르기에는 곡률이 있었다. 마치 너무나도 큰 구형이라도 그 맨 위 끄트머리에서는 평평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아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연구진에게 알렸다. 연구진도 얼빵한 표정으로 여러 장비를 챙겨 나와서 측정을 해보고선 돌 위에 엎드려서 종이위에 끄적거리더니 중대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완벽한 구형이라는 가정 하에 이 돌의 지름이 대략 2km 근처라는 것 이었다. 소수점 자리로 몇 자리 내려가긴 했는데 정확히 외우진 못했다. 내가 그걸 외웠으면 포클레인을 운전하겠는가?
숙소에 누워 티비를 켰을 때에는 아까 그 중대발표가 뉴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제 저걸 어떻게 할까? 깨부술 수 도 없고, 2km나 되는 돌덩이를 말이다. 내 작은 머리로는 고작 관광자원으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이제 땅을 팔 필요가 없어지면 나는 잘리는 걸까?
백수 D
한참동안 시끄럽던 검은 돌 사태는 언제나 그렇듯이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렇게 잊혀질 때까지 과학자들은 그 돌에 대해 하나도 밝혀내지 못 했다. 아 맞아, 그리고 어제는 K국의 어느 도시 바닥에서 하얀 돌이 발견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이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검은돌은 뭐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