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8.

와인과 초콜릿, 그리고 연필

대형마트는 자주 가는 일이 없었다. 다른 곳 에서는 볼 수 없던 물건들이 많은 곳 이었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너무 멀었다. 그래서 대부분 집 주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가끔씩 대형마트에서만 파는 물건이나 약간 비싼 기호품들을 살때만 가서 조심스럽게 가격을 계산해보면서 조금씩 사오는 식이었다.

그 날은 입대가 일주일 남은 날 이었다. 찌는듯한 열기도 조금 식어서 밖에 나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되자 남은 나날동안 먹고 마시고 싶은 것들이 생각났다. 집 근처 마트보다도 그동안 가끔씩 다니며 지갑사정 때문에 사지 못 했던 대형마트의 먹거리들이 떠올랐다. 더위와 무기력감에 누워있던 나는 지갑을 챙기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어폰을 꼽고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살까? 카레를 만들어먹을까, 초밥을 사볼까 아니면 훈제를 사볼까? 이번에는 무슨 술을 사볼까. 과자는 뭘 사볼까. 요즘 아침 입맛도 없는데 시리얼을 사볼까. 아무렴 일단 술을 사야겠지? 카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에도 목록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한 두바퀴쯤 돌아보면서 사고 싶은것들을 일단 넣어봐야겠다 하는 생각만이 들었다.

한 시간쯤 마트를 돌았다. 내 카트는 비어있었다. 먹거리를 집어 넣었다가도 다음에 와서는 다시 되돌려 놓는 바보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행동이 열 번을 넘어서자 나는 마트에서 길을 잃었다. 무언가를 먹고싶은 생각은 있지만 무얼 먹고싶은지는 모르겠고 무언가를 마시고싶은 생각은 있지만 무얼 마시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결국 빈 손으로 나갈 수는 없어서 머릿속에 떠오른 와인과 초콜릿을 카트에 담았다. 내가 마셔본 와인은 아니었지만 모스카토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였다. 넓은 카트에 두 가지만 체우고 나가려는 찰나 연필이 보였다. 이 글도 컴퓨터로 쓴거고 요즘 세상에 아날로그로 써도 샤프나 볼팬, 만년필을 쓰지 누가 연필을 쓰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런 장식없이 수수하게 나온 연필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버스에 앉아 생각했다.

결국 내가 원한건 싸구려 와인 한 병, 초콜릿 한 개 그리고 개당 백원 하는 연필 한 자루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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