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4.

기약 없는 프롤로그: 안개의 땅

이 마을에서 외지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머리위에 모자라고 불리우는 천떼기를 걸친 이들이 바로 외지인이다. 마을에 반나절이라도 있어본 이들이라면, 쓴지 5초 안 되서 날아가버릴 돈낭비는 하지 않을 테니까. 아, 저기 또 모자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가버린 모자는 운이 좋으면 지붕의 귀퉁이에라도 걸려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은 끝없는 절벽의 밑으로 가라앉아버리거나, 상승기류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그렇게 사라진 모자의 후일담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습기가 가득 서린 불쾌한 안개와 거쌔기만한 바람, 그리고 천길 낭떠러지가 우리 마을의 전부는 아니었다.

“좋소, 열기구는 준비가 끝났소외다. 밤이 되면 출발하시구려.”
할아버지는 열기구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판금갑옷을 걸친 용사는 물었다.

“왜 하필 밤입니까? 낮이 더 비행이 쉽지 않습니까?”
“밤에는 바람이 절벽에서 저 너머로 붑니다. 그 바람을 타야 안개의 땅으로 갈 수 있지요.”

수십년을 일해온 전문가의 말은 그 목소리에서부터 설득력이 가득했고, 용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해가 지고 다시 올테니, 준비를 철저히 해주십시오.”

당부를 거듭한 용사는 손바닥을 펴 보이고 뒤로 돌아 사라졌다.

“쯧즈... 아까운 목숨이 또 지려고 하는 구만.”
“그래도 멋있지 않아요? 미지의 땅으로 성큼 발을 내딛는 용사가.”

나는 할아버지에게 내 진심을 밝혔으나, 돌아온 것은 냉소뿐이었다.

“용사는 무슨... 고객이지. 물론 고맙긴하지, 저 사람들 덕분에 이 마을이 굴러가니까.”

하긴 그렇긴 하지. 하늘이 버린 땅이 제 스스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런데도 너는 말투가 꼭 가고 싶은 사람 같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덧붙었다. 아마 선망에 가득찬 내 눈빛을 읽었나보다. 나는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했다.

“에이, 미쳤다고 저런 곳을 가겠어요? 한 명도 되돌아오지 못 한 곳인데.”
너스레. 그래, 반쯤은 너스레였지만, 나머지 반은 사실이었다. 저 너머, 안개의 땅이라는 곳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년에 열흘 정도, 날씨가 맑은 날에야 저 땅의 끄트머리가 겨우 보이는 곳이다. 굳이 생판 모를 곳에 가서 목숨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할아버지는 내 대답에 어느정도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얌전히 이 일이나 배워라. 굳이 위험한 일을...”
“생존자다!”

할아버지의 연륜이 가득찬 목소리는 어느 찢어질 듯한 고함에 가로막혔다. 생존자라니? 주위의 사람들도 영문을 모른체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그 뜻을 이해하고 달려가 절벽 너머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비켜, 잘 안 보이잖아!”
“여긴 내 가게라고! 다들 꺼져!”
“세상에 맙소사, 저길 봐!”

누군가 다급하게 삿대질을 하자, 싸우던 이들마저도 침묵에 사로잡혔다. 저 너머, 안개를 해치고 붉은 열기구가 나타났다. 낡고 해지고 비틀거리는 붉은 얼기구가 안개를 해치고 나타났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안에 있다. 모두가 숨죽여 열기구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에서 누군가 살아 돌아오고있다. 겨우겨우 불길을 이어오던 열기구는 강한 북풍을 맞고 왼쪽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내 머릿속에서는 열기구의 추락 위치가 그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달렸다!

“리온! 가지 마라!”

익숙한 골목길을 달려나가며, 서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예상한 그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각도가 가파랐다. 이대로 가다간 낭떠러지가 삼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십몇년만에 찾아온 기회를 이대로 날릴 수는 없다.

“이봐요!”

나는 큰 소리로 외쳤고, 열기구 안의 다급한 생존자와 눈이 마주쳤다.

“방향타를 반대쪽으로 돌려요!”
“미쳤어!?”

여리지만, 강철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상승 기류를 타면 저 절벽 끄트머리에라도 불시착할 수 있어요!”

내 말을 들은 생존자는 잠시동안 망설이더니, ‘에라 모르겠다’ 싶은 표정으로 방향타를 꺾었다. 휘청거리던 열기구는 균형을 잃고 낭떠러지로 빨려들어가는가 싶더니, 날개를 핀 것처럼 날아올랐다!

“내 말 맞... 어, 어!”

날아 오른 것은 좋았지만, 이미 조향능력을 잃어버린 열기구는 엄한 남의 집 지붕을 향해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아아악!”

뒤이어 들린 것은 우지끈과 우당탕이 섞인 소음. 그리고 뒤이어 보인 것은 먼지와 튀어오른 파편. 나는 졸이는 가슴을 붙잡고, 생존자가 살아있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그 짙은 흙먼지를 뚫고서 나온 것은

“죽을 뻔 했잖아! 여기 이렇게 높은 건물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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