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달군 바닥을 벼리는 작업화. 담금질은 할 사이도 없이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작업화도 쉴 사이 없이 작업장을 누빈다. 노가다판은 공동묘지와 같아서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 자의냐 타의냐를 떠나서 굳이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듯한’ 일자리를 뒤로 한 채, 이곳에서 땀 흘리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이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내 가슴에, 더 깊은 공감을 울린 이들은.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었다.
아저씨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학생들의 사연은 거의 하나였고 다들 말하지 않아도 그 사연이라는 게 등록금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명문대도 지잡대도 없이 그저 한 명의 채무자였을 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함바에서 뚝딱 때우고,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또 만났다’ 라느니, ‘저번에 같이 왔던 친구는 몸을 다쳐서 편돌이 자리를 잡았다’느니. 비슷한 처지와 마음을 공유하는 또래와의 대화는 고단함을 덜어주었다.
하루는 잔업까지 있어서 주머니가 무거웠다. 노가다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이 비추지 못한다. 가로등은 오직 대로변만을 비출 뿐이다. 검은 길가로 걷다 보면 허름한 고시원이 보인다. 계단 옆에는 녹이 슬은 자전거가 반쯤 누워 난간에 묶여있다. 건물주는 알뜰하게도 쇠 난간 중간중간마저도 거미들에게 세를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깥보다도 더운 공기가 느껴졌다. 진한 라면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그대로 내 매트릭스에 누웠다. 개강 전까지 바짝 벌어놓으려면, 내일 새벽을 맞이해야 한다.
그날은 종강으로부터 정확히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같이 인력사무소로 달려나가 데마찌만 안 나길 기도하고, 점심이면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과 노가리를 까고 퍼진 몸으로 퇴근을 앞두고 있던, 평범한 날이었다.
운수가 좋아서 아침부터 내리 실내작업만 했었는데, 고아원 보내기 전에 짜장면 사준다더니, 이런 상황이었을까? 신나는 퇴근을 하러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나는 평소처럼 계단의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몸이 붕 뜨더니,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이든 첫날, 나는 의사에게 열 손가락 모두 이상 없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컴퓨터 공학과 다니는 사람이 손가락이 멀쩡하지 않으면 뭐 어디에 쓴단 말인가? 굳이 컴공이 아니더라도 손가락이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뭘 먹고 살 텐가.
손가락은 안심이었지만, 산재처리 문제는 고심이었다.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노동청까지 왕래해야 하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돈이 문제였다. 병원비며, 생활비며. 심지어는 다음 학기 등록금까지. 아마 어찌어찌하면 잘 처리될 문제긴 하지만, 지금 내 살가죽에 아주 깊이 박힌 문제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 걱정을 뒤로하고 나는 노트북을 침대에 딸린 밥상에 얹어두었다. 무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실은 네이버에서 뉴스를 읽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내 흥미를 잡아끈 기사가 있었다.
[도박사이트]
나는 도박이 나쁜 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박하라고 강요한 사람도 없고, 사기도박이 아니고서야 누구를 기망하지도 않지 않나? 그런데 왜 처벌한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이걸로 등록금을 벌 수 있을 탠데.
비록 포트폴리오에 넣을 수는 없겠지만, 딱히 이것 말고는 만들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취미 반, 이걸 써먹을 생각 반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다리’ 간단한 도박이었다. 맞추면 1.95배, 틀리면 나가리. 카지노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도박사가 아니라 카지노다.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공학을 배운걸 다행이라고 느꼈다. 어찌 어찌 들은 것들과 배운 것들로 나는 도박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환금성은 떨어지지만, 추적을 피하려고 비트코인을 화폐로 사용했고, TLS는 당연히 적용해서 차단되는 불상사를 피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우려했던 건 해커의 공격이었다. 어쩌면 이 부분에 한 달이 넘도록 투자했을 것이다.
나와 노동청, 사측간의 멕시칸 스텐드오프가 끝나갈 무렵, 나도 임대한 해외 서버에 사다리 도박사이트를 설치했다. 그리고 트위터로 봇을 돌려 홍보를 했다. 돈을 주고 홍보를 하면 더 좋겠지만, 꼬리는 길면 밟히는 법이다. 이걸로 등록금만 벌고 털어야지.
나는 참치를 잡는 노인의 심정으로 매일 밤, 침대에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째 검은 화면에 커서만 명멸할 뿐, 터미널은 그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접속 로그가 잡혔다. 비록 잠시 후 접속을 종료했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보였다. 더는 노가다판에서 구르지 않아도 된다. 나도 어디 금수저처럼 손 더럽히지 않고 대학 다녀보자.
이윽고 한 달, 노동청은 내 손을 들어줬고 덕분에 다음 학기 등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다리 사이트는 자리가 잡혀서는 조금씩이지만 비트코인을 모으고 있었다. 비록 꼬리가 밟히지 않는 환금을 위해서는 일본의 딜러에게까지 직접 가서 비트코인이 담긴 USB를 직접 전하고 엔화로 받아와야 했지만, 보안성만큼은 확실한 방법이었으니, 나는 지갑에 편도 비행깃삯만 남을 정도가 되면 다녀오고는 했다.
과제와 리포트에 시달리던 한 학기가 지나는 동안, 나는 로그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가끔 같잖은 공격이 이어졌지만, 어차피 성공도 못 했고 나도 손이 깨끗한 축에 들지는 않으니 그냥 아이피를 차단하는 선에서 그치곤 했다.
종강한 지 일주일이 안 됐을 무렵, 역대박이 터졌다. 그 날따라 사람들이 몰린 한쪽으로 사다리가 터져버린 것이다. 평소 같으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겠지만, 저번 주에 비트코인을 모두 등록금을 낼 현금으로 바꾸어두었기에 나에게는 그럴만한 그걸 막을만한 돈이 없었다.
해외 서버에서 지금까지 잡히지 않은 것은, 내가 임대한 서버가 있는 나라에서 도박을 엄격하게 금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지, 여기서 잘못 대처하다간 사기죄로 끝나기 십상이었다.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나는 다시 등록금이 든 통장을 잡았다. 비록 환율 스프레드 때문에 손해는 좀 보겠지만, 내 사다리를 누군가 차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건 내가 타고 올라갈 사다리다.아무도 날 방해할 수는 없어.
우선 약간의 장난을 쳐서 출금에는 문제가 없도록 해두었다. 은행의 지급준비율 같은 원리였다. 나는 일본의 딜러에게가서 등록금을 건냈다. 비트코인을 서버에 넣고 숨죽이며 노트북으로 결과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저번처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한쪽에 몰려있었다.
약속의 시간이 되자, 내 속도 모르는 야속한 종이 따르릉 울리고, 사다리를 타고 붉은 핏방울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종이로 가려진 부분까지 내려왔다. 나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종이가 사라졌다.
내 작품은 나를 배신했다.
“그래, 끝났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수많은 돈이, 내 등록금이 모조리 얼굴도 모를 수많은 사람에게 배당되었다. 나는 뒤이은 배팅을 모두 취소하고, 환불했다. 그리고 서버를 내렸다. 배당되고 남은 비트코인을 계산해보니 딱 귀국 푯값만큼 남았다.
귀국 후 다음 날, 나는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내 사다리, 내가 타고 올라가려 했던 사다리는 나를 배신했다. 방이 어두워지자 나는 티비를 켰다. 어두운 방이 조금은 밝아졌다. 뉴스에서는 인터넷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도박사이트들이 사회의 큰 문제라고 보도했다. 일진들은 도박비용을 대기 위해 학생들을 삥뜯었고, 사채를 쓰고 가출한 중학생, 등록금을 날린 대학생도 있었다. 어떤 초등학생은 천만 원을 날렸다고? 부모가 건물주라도 되나 보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는 서버 임대 연장을 포기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터미널로 들어가 이제는 사라져버릴 내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바라본 코드는 어색한 곳도 있었고, 아예 스파게티처럼 엉켜버린 곳도 있었다.
'아, 이부분은 코드를 좀 이상하게 짰네'
'이부분은 병목이 심했겠구나.'
'어? 이 파일은 뭐지?'
그렇게 디랙토리를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뭔가 이상한 파일을 찾았다. 나는 분명 여기에 파일을 만든적도 없고 실행권한을 준적도 없는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어쩐지, 그렇게 역배가 연속으로 뜰리가 없었을텐데. 내 작품이 아니라, 남의 작품이었구나. 나는 허망함과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결국, 또 등록금을 위해 노가다를 뛰어야 할 운명이었다. 이른 새벽을 위해 매트릭스에 누웠을 무렵, 홍보용으로 쓰던 트위터에 반응이 왔다.
‘사이트를 매수하고 싶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좆 까세요.’
ps. 이 글을 처음 작성할 당시의 비트코인가격은 천오백만원 가량이였습니다. 후기를 작성한 2018년 1월에는 이천만원 언저리 입니다. 주인공이 차라리 존버를 했더라면 나았을텐데요. 물론 둘 다 도박판인건 맞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