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

영원의 은둔처

"술이 웬수지."

나는 두 번째 횃불에 불을 밝혔다. 은은하게 밝아지는 횃불속에서 아늑한 여관의 환상은 흩어진다. 다 꺼져가던 횃불로는 볼 수 없었던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마치 넓은 광장같았다. 그 한 가운데에는 고대의 석탑이 서 있었다.

석탑의 몸체에는 이해할 수 없는 세밀한 음각이 되어있었다. 특정한 형태의 반복으로 보아 아무렇게나 새긴 것이 아니라, 어떠한 언어의 형태를 띈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일개 사냥꾼인 내가 파악할 수 있던건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확실해. 태곳적 이 땅을 거닐던 이들이 있었어."

그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이런 은둔처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일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추측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제국은 이곳으로 정찰대를 보낸걸까?



달이 가득 차기 몇일 전, 나는 격전지 주변의 여관에 발이묶여있었다. 전쟁통에 돌아다녔다가는 객사를 당할지도 모르고, 북부의 겨울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예 이곳에서 봄을 기다리려는 참이었다. 그럴 생각으로 선금도 두둑히 맡겼고.

"슬슬 선금으로 낸게 바닥입니다."

수십 년을 이곳에서 보낸 여관주인은 특유의 북부 억양으로 나를 재촉했다. 선금이 바닥날 리가 없다. 저번 달에 금화를 얼마나 맡겨놨는지도 모른다.

"어디 장부좀 봅시다. 하루 묵는데 1골드였죠? 그럼 분명 꽃필 무렵 까지는..."
"방값은 1골드죠. 그런데 물 마시듯 마신 술 값은 따로 계산해야죠."

그는 나에게 빼곡한 장부를 내밀었다. 삐뚤빼뚤한 서명에서는 술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 서명이 맞는 것 같다. 술이 웬수지, 한 겨울에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남아 있는 잔금으로는 나흘입니다."
"아이고 머리야... 한 잔 먼저 주시오."
"이제 사흘입니다."

나는 여관주인이 내려놓은 술 한 잔을 잽싸게 잡았다. 코에 그윽한 참나무 향기가 맴돌자 머리가 슬슬 돌기 시작했다. 연갈색 한 모금을 넘기자,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차갑게 그려졌다. 나는 아주 좆됬다.

"여기 사냥꾼 있나?"

자괴감에 빠져있을 즈음, 문이 열리고 고고한 제국의 억양이 들려왔다. 돈냄새가 나서 돌아본 뒤편에는 제국군 갑주 위에 두꺼운 모피를 걸친 사내가 서 있었다.

"여기, 내가 사냥꾼이요."
"주인양반, 방 하나만 빌립시다. 이 사람과 할 말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며 금화 하나를 던졌다. 여관주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우리를 지하실로 안내했다. 아마도 제국군에게 좋은 방을 내주기는 싫었나보다. 장교는 양초에 불을 밝히며 물었다.

"이봐, 사냥꾼. 이 근방 지리 잘 아나?"
"사냥꾼 10년이면 자기 집 가는 길 말고는 다 압니다."
"그럼 은둔처라는 동굴도 알겠군. 이 근방인데."

은둔처, 알다마다.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거긴 들리는 사람마다 횡액을 당한다는 저주받은 동굴이었다.

"위치와 악명까지 상세히 알고있죠."
"그럼 잘됬네. 거기좀 다녀오게"

웃으며 그런 저주를 날리는 제국군 장교에게 '개소리 집어 치우십쇼'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는 묵직한 금화주머니로 내 말을 다시 눌러넣었다.

"이건 선금이고, 일 마치고 주둔지로 오면 두 배로 주지. 어떤가?"
"우리가 날품팔이 수전노라지만... 목숨이 달린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입니다."

그렇게 궁시렁거리긴 했지만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임무를 거절하면 사흘 후에는 이 여관을 떠나야 한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군인들에게 위협받고, 해 떨어지고 매서운 밤바람이 불면 얼어죽을 수밖에.

"그래도 일이나 한 번 들어봅시다. 제국이 이렇게 후하게 처줄 사람들이 아닌데."
"백 마흔 다섯 명, 어제 죽은 내 부하들일세. 동사, 병사, 상처 악화. 하루 빨리 이 전쟁을 끝내고싶어."
"은둔처에 전쟁을 끝낼 방법이 있답니까?"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확고한 어조로 나에게 부탁했다.

"은둔처로 들어간 정찰대 생존자를 데리고 오게."
"생존자요? 거기서 뭐 난리라도 났답니까?"
"북부놈들과 교전이 일어난 것 같아, 형국이 아주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문 너머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진다. 그 소리를 들은 제국군 장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서로 한참을 속닥거리고나서야 나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일촉즉발이라는군. 가기 전에 선물 하나를 주지."
"금괴였으면 좋겠는데요."
"헛소리 말고 조심히 받게, 날이 잘 드는 칼이니까."

장교는 자신이 차고 있던 칼 한자루를 넘겨주었다. 흔한 제국군 칼 처럼 보였지만 은으로 세공된 문양이 이 사람의 직위를 짐작케 했다. 그는 전령과 함께 여관을 떠났고, 나는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들고 올라가 주인 앞에 내려놓았다.

"횃불 네 개에 식량 나흘치 챙겨주고, 남은건 장부에 적어두시오."
"챙겨는 드리겠습니다만, 어디로 가시나봅니다?"
"은둔처로 갑니다. 나도 내키진 않지만."

내 목적지를 들은 여관주인은 손사래를치면서 얼굴을 찌뿌렸다.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여관주인이 쥐고 있는 주머니를 냉큼 받아버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사람들은 그 동굴 얼씬도 하지 않아요."
"나도 내키지 않는다니까요?"
"그럼 부정 덜 타는 음식이라도 먹고 가시오."

여관주인은 허리를 굽혀 한참을 짐더미와 투닥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내민건 해초 몇가닥이었다. 바다의 가호가 저주를 막아준다나 뭐라나. 헛소리로 치부하고 싶긴 했다만, 나도 내심 불안해서 낼름 받아먹었다.

"그런데 이 일로 제국이 이기면 당신 영업에 문제 생기는거 아닙니까?"
"하! 이런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오. 그 놈들은 결코 북부를 가질 수는 없을꺼요. 두고 보시오."

거 참. 은둔처의 어둠속에서 다시 곱씹어보아도, 그만큼 당찬 사람은 없었다.



두 번째 횃불이 조금 타들어갔을 무렵, 나는 북부 추적자와 제국군 간의 교전지를 찾아냈다. 생존자를 찾는건 어려워보였다. 그저 꺼져버린 횃불과 주인 잃은 검과 방패. 그리고 그것을 쥐고 있었던 시체들 뿐이었다.

어느 편의 시체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내가 받은 임무는 제국군 생존자를 데려가는 것이지, 시체를 들추어 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횃불로 어두운 방향을 비추었고, 피골이 상접한 얼굴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 살아 있어요?"

죽음의 문턱에 선 얫된 얼굴이 껄떡였다, 며칠을 어둠속에서 보낸건지 알 수 조차 없을만큼 초췌해보였다. 나는 내심 이 자가 제국군 생존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제국군 생존자입니까, 아니면 북부?"
"무, 물좀..."

내가 바라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나라도 이런 뒤숭숭한 동굴에 갇혀있다보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에게 물과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생존자의 얼굴에는 곧바로 혈색이 도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은인이십니다. 이 흉흉한 은둔처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제국군 생존자를 찾으러 왔지만... 그쪽은 북부 사람이군."

나는 쓰린 입맛을 다셨다. 갈증을 풀어낸 혀가 내뱉은 것은 나와 같은 북부의 억양이었다. 하긴 돈을 그렇게 받아놓고 한 번에 일을 끝내려는건 도둑놈 심보였지.

"... 당신도 북부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왜 침략자들을 위해 일하는거죠?"
"어릴때 살아서 말투만 배운거요. 그리고 그 침략자들은 돈이 꽤 많더군."
"우리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도와준건 고마워요."

생존자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짧은 신음을 내뱉고는 다시 무너졌다. 무릎이 기괴하게 꺾인걸로 보아 뼈가 나간 것 같다. 어둠과 부상때문에 여기에서 죽어가고 있었군.

"난 내려가봐야겠어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에 있을겁니다. 누군가 나를 구하러 분명히 올거에요."
"지상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럴 여유가 많지 않을겁니다."

그러니 제국마저도 자기네들 생존자 대려오는 일을 나에게 떠밀었지. 체급부터가 부족한 북부가 지원병력을 보낸다는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어릴적에 여기 있었다고 했죠, 북부를 모르는거에요."
"왜요, 당신네들은 친구를 버리지 않는답니까?"
"봄꽃이 모진 겨울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거든요. 그래서 견딜 수 있는거죠."
"그러다 죽으면요?"
"서쪽 하늘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데요. 이제 거길 거닐게 되는거죠."

생존자의 뜬 구름 잡는 소리가 조금은 낭만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겨울이 지고 봄꽃이 피는 것 보다는 생존자가 시체가 되고 거기서 버섯이 피는게 더 빠르겠지. 나는 그에게 몇가지 선물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난 그런 헛소리 믿지 않아요. 우리 내기를 해보죠. 여기 횃불 하나랑 독 미나리입니다."

나는 생존자에게 횃불과 말린 독 미나리를 넘겨주었다. 과연 독 미나리를 입에 무는 순간까지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여길 살아서 나가면 내가 한 잔 사죠."
"하하, 좋아요. 그런데 독 미나리는 왜 주는거죠?"
"당신에게 포기할 기회를 주는겁니다. 잘 있어요."

어짜피 내가 구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다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생존자를 등졌다. 횃불마저 끝까지 비추지 못하는 어두운 통로가 끝없이 보인다.

"조심히 다녀와요. 내가 술 맛있는 여관을 알고 있으니까."



통로는 더욱 더 깊은 곳으로, 그리고 땅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의 덩쿨을 횃불로 쳐내며 천천히 내려들어갔다.

군데군데 핏자국과 한 두 구의 시체 말고는 찾을 수 있는게 없었다. 나는 무릎을 꿇어 시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두 진영의 시체 모두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사후에 시신을 손 댄 흔적이 보였다. 이는 생존자가 남아 이 시신을 수습했다는 분명한 증거다.

나는 그 생존자를 찾아 더욱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횃불이 비추지 못하는 저 어둠 너머로 내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울렸다. 어둠속을 한참이나 걸었더니 속이 답답해져왔다.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었다. 저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메아리였던 것 같다. 울적한 기분이 들어서 '술이 웬수' 라는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둔처에 대한 세간의 소문이 맞은 것 같다. 방첨탑에 새겨진 글귀도 보나마나 '이 곳은 지배자의 잔해가 머무는 은둔처이다. 이 문을 연 자, 죽음을 맞으리라.' 하는 내용이겠지. 괜히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두 번째 횃불이 절반즈음 타들어갔다. 그 덕분에 두 번째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꽤 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 후에야 말이다. 무뎌진 횃불의 일렁임이 칼날 끝에서 반짝였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천만다행인 사실은 칼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나를 습격한 사람이 제국군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습격자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내가 온 이유에 대하여.

"제국군에서 고용한 사냥꾼입니다. 생존자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헛소리 마라, 네 혓바닥에서 나오는게 북부 사투리인걸 모를 것 같나?"

염병할 혓바닥! 기억도 안나는 어린시절을 이딴 얼음지옥에서 보낸게 후회가 되었다. 어떻게던 이 습격자를 납득시키던지 아니면 맞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내 손은 은세공이 된 칼로 향했다.

아, 맞다. 칼.

"잠깐, 나에게 당신네들 장교의 칼이 있습니다. 한 번 확인해보시죠."
"칼이야 죽이고나서 가질 수도 있는거 아닌가?"
"확인이나 해보십쇼! 이 칼이 야전 장교가 들고다닐 칼인지, 아닌지."

그정도는 알고 있다. 은세공된 칼이 아무에게나 가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 습격자도 모를리가 없다. 목을 베일 듯 겨누었던 칼이 조금은 멀어진게 그 증거다.

"좋아, 왼손으로 그 칼을 뽑아봐라. 단, 새끼 손가락은 펴고 뽑아."

나는 아주 천천히 칼을 뽑았다. 습격자의 말대로 새끼 손가락을 펴고 뽑으려니 잘 뽑히지 않았다. 매끈한 검신에 붉은 횃불이 비추고, 장인의 솜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습격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동안 멈짓하더니 결국 칼을 거두었다.

"나는 정찰대장 아비소프요."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랍니까?"
"우리가 알아낸 것도 그리 많지 않소. 일단 계속 내려갑시다."
"내려가요? 난 당신을 데려가려고 왔단 말입니다."

다 잡은 토끼가 이번에는 나를 굴속으로 끌고 가려고 작정을 했다. 아무리 사냥꾼이 험한 곳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지만, 목숨이 달린 일에는 예외가 항상 있는 법이다. 하지만 아비소프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내 일이 끝나지 않았네. 빈 손으로 돌아가면 잔금을 치뤄줄 것 같나?"
"그럼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쇼."
"그런데 만약 나 홀로 가서 죽으면 어찌하겠나. 생존자를 데려가야하지 않나?"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게 뭡니까?"

슬슬 짜증이 나려던 즈음, 아비소프는 자기가 원하던 질문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나와 같이 내려가지. 윗선에 이야기 해서 추가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네. 더군다나..."
"더군다나 뭐요."
"자네도 궁금하잖나? 내려가는 길에 천천히 설명해주지."

나는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기도 했지만, 아비소프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이 은둔처가 궁금했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터부시하는지, 왜 제국군이 정찰대를 보낸 것인지.

"좋습니다. 앞장 서시죠."



나는 세 번째 횃불을 높게 치켜들어 통로를 비추었다. 흐릿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가야할 길 쯤은 비출 수 있었다.

"말 해준다고 했잖습니까, 어디 해보십쇼. 여기에 왜 왔는지."
"은둔처에 전쟁을 끝낼 만한 고대의 유산이 있다더군. 잠시 횃불좀 빌리지."

아비소프는 짙은 거미줄을 횃불로 불살랐다. 이 밑으로 내려가는건 우리 둘이 처음일 것이라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고대인의 유산을 최초로 보게되다니!

"고대인들은 자신의 힘을 영원히 감출 수 있을거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오산이오."
"빨리 찾는게 좋을겁니다. 위에서는 상황이 제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더군요."
"아, 그래 맞아. 모진 겨울은 북부의 성벽같더군. 그래서 이 힘을 찾아가려는거요."

거미줄을 헤치고 나아가자, 아까와 같은 드넓은 방이 보였다. 그 곳에 장대한 크기에 석판이 서 있었다. 보는 이에게 묘한 어지러움을 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그 크기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금껏 본 석판중에 가장 크군요."
"승리가 머지 않은 것 같군."

나는 천천히 다가가 석판에 손을 올렸다. 매마른 이끼의 감촉이 느껴졌다. 아까와 같은 형태의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석판의 오른쪽 면에는 다른 형태의 문장이 써 있었다.

"이건 마치 다른 언어로 기술해놓은 것 같네요."
"읽을 수 있겠나? 고대의 유산이 어떤 종류의 힘인지 말일세."
"그정도로 학식이 높았으면 승냥이처럼 여관바닥을 기어다니진 않았겠죠."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려고 석판에 붙은 이끼를 때내었다. 감추어져있던 문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어? 이건..."
"왜그러나?"
"이건 읽을 수 있어요. 잠깐 횃불좀 잡고 있어봐요."

단어가 예스럽고 오래된 표현이 섞인 부분만 빼면 북부의 고어와 맥락이 비슷했다. 아비소프가 비추는 횃불로 나는 석판의 한쪽 면을 유심히 읽었다.

"온... 칼, 로. 고대인들은 이 곳을 온칼로라고 불렀어요."
"유산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건가?"

나는 내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이 장소는... 명예로운 장소가 아닙니다. 가치있는 것은 여기에 없습니다."

마모된 음각 사이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것 뿐입니다. 이 문자는 그 위험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이곳에 있다는 고대의 유산이, 위험하다고? 기묘한 표식과 해골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이 위험이 내뿜는 힘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영원히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때 나는 마법에 홀린 것 처럼 환상을 보았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빛줄기와 굉음. 버섯과 유사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증발한다. 이윽고 대지는 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다시는...

"이봐, 괜찮나? 안색이 안좋은데."
"이건... 유산이 아니에요. 고대인들마저 감당할 수 없어서 이곳에 방치한거에요."
"아닐세, 자네가 말했잖나. 이 힘으로 우리의 적을 죽일 수 있어."
"적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죽이고 말거요!"

내가 소리치자 아비소프는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침착하게 칼을 꺼내어 나에게 겨누었다. 나 역시 밀릴 생각은 없었기에, 제국군 장교가 주었던 칼을 꺼냈다.

"자네는 그저 사냥꾼이잖나? 이렇게 대적해야 하는 이유는 없잖아."
"목숨이 달린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죠."
"제국은 이 전쟁을 끝내고 하나된 대륙을 호령하게 될걸세."
"황무지가 된 벌판과 잿더미왕좌에 앉아 호령하게 될거요. 이 이상 우리가 다가가면 안됩니다."

아비소프는 들고 있던 횃불을 허공에 휘둘러 그 불빛을 꺼뜨렸다. 방안은 완전한 어둠에 휩쌓였고...

발 딛는 소리와 함께 강철같은 주먹이 날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어둠이 덮힌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턱에 얼얼한 감각이 아직도 남아있다. 헌데, 저 멀리 붉은 빛이 아른거린다.

"거기 누구에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붉은 빛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타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들겨 맞은 것 처럼 무거운 몸을 천천히 일으켜 그곳으로 향했다.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난다.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더욱 강해진다. 미묘한 복통, 나는 천천히 죽음을 향해 걸어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점점 붉은 빛이 강해진다. 이미 한참을 타오른 횃불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횃불을 쥐고 있던 아비소프는 입에서 피를 흘린 체 쓰러져있었다.

"아비소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죽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내것이었던 횃불을 다시 들어 주변을 살폈고, 이 곳의 정체를 다시 한 번 더 알게 되었다.

나와 아비소프는 수천 수만의 노란 강철통으로 둘러쌓은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것이 고대인이 온칼로에 격리한 '유산'의 정체였다. 현기증이 났다.

노란 통 하나 하나에서부터 강렬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인중을 따라 뜨겁고 끈적거리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나는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조금만 더 있다간 진짜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열려버린 대형 문과 마주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비소프가 열어버린 이 문을 통해서 고대인의 망령이 천천히 세상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안돼... 그럴 수는 없어."

온칼로의 마지막 문을 닫아야 한다. 이대로 두고 떠나면 보이지 않는 독기가 대륙을 휘감아 북부도 제국도 무너뜨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고대인들 처럼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질테지.

나는 모든 것을 토해버릴 것 같은 불쾌한 힘에 맞서 문을 밀었다. 납으로 만든 육중한 문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수 만년 동안 그래왔듯 다시 그 무거운 문이 서로 맞물리게 되었다.

문을 닫았지만 나는 아직도 죽어가는 것 같았다. 여전히 어지럽고 온 몸은 불에 타는 것 처럼 아팠다. 하지만 조금씩 몸을 움직여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는 있었다.

어쩌면 내 몸은 햇볕을 볼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횃불은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시야는 아까와 비교할 수도 없이 흐릿해졌다. 아니, 어지러워서 아까의 기억조차 흐릿하다.

조금씩 시야가 어두워진다. 횃불이 점차 사그러들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죽어가고 있는걸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지쳐 쓰러졌다.



스으윽, 스으윽.

아직 눈은 어두웠지만, 무언가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발자국소리는 아니지만 무언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아군인지 적인지는 상관없었다. 사냥꾼에겐 아군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살고싶었다.

"도와...주세요."
"거기 있었군요, 조금만 기다려요."

북부 억양의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붉은 횃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사람이 천천히 기어오고 있었다.

"통로 너머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길래 와봤어요. 괜찮은거에요?"

괜찮냐는 질문에 좋은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머리는 어지럽고 온 몸은 두들겨맞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선 후, 그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같이 나가죠. 여기까지 기어오느라 쥐나는줄 알았으니까."
"독 미나리를 줬을텐데요."
"말했잖아요, 겨울은 지나간다고. 날 좀 부축해줘요."

내가 부축을 받을 입장이었지만, 다리 뭉개진 사람 앞에서는 그나마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그 사람을 일으켜주었다. 우리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조금씩 출구로 다가갔다.

"그 안에는 괴물이라도 살던가요? 만신창이가 되서 오셨네요."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영원히 격리시켜야 하니까."
"그래요? 엄청난게 있었나보네요."

정말로 엄청난게 있었지. 까딱 잘못하다간 세상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만한 엄청난게. 고대인이 남기고 간 막대한 양의 부채 상속이 남아있었지.

"어서 나가죠.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맙시다."
"말도 안해주시네. 궁금하게."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사악한게 묻혀있었어요. 고대인의 똥같은거요."

그 사람은 조금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자신의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모든 것을 납득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좀 속시원하게 말..."
"쉿, 저쪽에서 소리가 나네요."

나는 손가락으로 입구쪽을 가리켰다.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자 조금씩 저 멀리 어둠속이 보였다. 저벅거리는 소리, 다섯 명 정도. 철렁거리는 소리, 모두 중무장을 하고있다.

"목소리 낮춰요. 아마 나를 데리러 온 제국군일겁니다."
"난 이제 끝이군요. 빌어먹을 놈들."
"아니요. 당신은 저들에게 내가 고용한 시종이라고 말하십쇼."
"지금 저놈들한테 거짓말로 연명하라는겁니까?"
"목소리 낮추라니까요?"

비록 다리는 절고 있지만 어린 북부 군인의 눈동자에서는 설움이 불타올랐다. 대국에 맞서 싸워 모든걸 바쳐야 했던 투쟁의 설움. 독미나리마저 거부한 그는 이제 죽음을 자초하려 한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이 자를 봄꽃이 피는 벌판으로 이끌거나, 서쪽 하늘의 꽃밭으로 이끌거나. 일개 사냥꾼에게는 오지랖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사람 목숨 한 번 살려보기로 했다.

"미안한데, 좀 아플겁니다."
"뭐요?"

아비소프에게 배운 그대로 행했다. 횃불을 허공에 휘두르자 우리는 다시 어둠속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죽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로비사 군인의 턱을 날려버렸다.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털부덕 하는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혹시나 해서 손목을 잡아보니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이 푸닥거리를 들은 다섯 명의 방문자는 소리를 질렀다.

"거기 누구냐!"
"당신네들 장교가 일을 맡긴 사냥꾼이요. 내 시종이 쓰러졌소. 도와주시오."
"우린 후발대입니다. 조금만 계십시오. 바로 가겠습니다."



이 친구가 영영 일어나지 않으려나 걱정했건만, 다행히도 한 시간만에 눈을 떴다. 우리 둘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눈을 마주쳤다.

"턱은 좀 미안해요. 소리는 지르지 마세요. 의심을 살테니까."
"읍읍!"

나는 혹시나해서 걸어두었던 재갈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손발의 매듭은 그대로 두었다. 지금 풀어주었다간 내 턱이 무사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보고 비겁하게 살아남으라는겁니까? 이건 당신 일도 아니잖아요."
"내가 왜 당신에게 횃불까지 줬는지 알아요? 당신의 일장연설이 꽤 마음에 들었거든."
"나는 저놈들과 맞서 싸우려고 살아남은거요. 하지만 뭐, 살아남으려면 저놈들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아니요, 한 마디면 됩니다. '내가 이 사람의 시종이요.' 한 마디요."

이제 이 친구만 도와주면다면 모든 일이 완벽하게 끝난다. 전의를 상실한 제국군은 결국 물러날테고, 북부에 봄이 온다. 나는 안락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고, 이 친구는 짧은 조사만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겠지.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봄꽃이 어쩌네...' 하던 인간이 이제는 죽기를 각오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서러움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과연 목숨보다 귀하던가?

"사냥꾼! 주둔지에 거의 다 도착했소이다."

마부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나는 손발에 묶은 매듭마저 풀어주었다.

"당신과 나는 달라요. 북부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북부를 위해 죽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요. 내 집은 제국에도 로비사에도 없으니까."
"그럼 당신은 뭘 위해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라는거죠? 돈이라도 달라는건가요?"
"북부를 위하여, 잿더미가 된 땅을 일굴 사람이 필요할거요. 그러니 살아남으란 말입니다."

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 속에 담긴것은 수긍일까 아니면 적의일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마차가 결국 멈추어 섰다는 것과, 우리는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한체 주둔지에 도착했다는 것 뿐이다.

"당신의 신념은 잘 알겠지만, 목숨이 달린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죠. 갑시다."

북부의 묘목은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그의 품속에 있는 단검을 보았다.



"우리 저번에 봤을 때에는 지하실이었지, 사냥꾼?"

풍성한 모피를 걸친 총사령관은 우리에게 술잔을 권했다. 모진 고생 끝에 맡은 참나무 향기는 황홀하게 느껴졌고, 나는 단숨에 한 잔을 비웠다. 하지만 찬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그랬었죠. 이 칼은 정말 잘 썼습니다. 요긴하더군요."
"돌려줘서 고맙군. 은둔처에 묻힌 고대의 유산은 어떤 종류의 무기였나?"
"그건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고대인의 저주였지요."

나는 내가 겪은 사실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비문에 적혀있던 고대인이 남긴 말, 아비소프의 행동과 죽음, 깊은 곳에 남겨진 저주까지도 모조리 이야기했다. 옆에 있는 북부 친구의 이야기만 빼고.

"그래서... 우리쪽 생존자는 없었다?"
"네, 제국측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은둔처에 묻힌건 세상을 파멸시킬 저주뿐이었고?"
"그렇습니다. 다시는 파해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날 것이다. 유산만을 믿고 전선을 무리하게 유지해온 제국은 버틸 제간이 없다. 다들 북부의 패배를 예측했지만, 모두 틀렸다. 끝까지 살아남은 그들의 방어전이 빛을 본 것이다.

"좋아, 전령은 강화회담을 주선하라. 이 피투성이 전쟁을 끝내자."

하지만 나는 거짓말 하나를 더 보태기로 결심했다.

"영구 강화회담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나 한 번 들어보지."
"은둔처에 묻힌 힘을 저 놈들이 악용하게 된다면, 다음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날겁니다."

물론 그럴 여지는 없다. 그 곳은 내가 살아나온게 기적인 곳이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전쟁을 막으려면 이것 뿐이다. 총사령관은 나를 꿰뚫어보았다. 마치 거짓말인걸 아는 것 같았다.

"황제께는 그렇게 보고하지. 항구적인 평화를 이 자리에서 말하긴 어렵겠지만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네가 대려온 친구는 누구지?"

이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남았다. 이 빌어먹을 녀석의 행동에 모든게 달려있다.

"저는..."

아찔한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만약 저 녀석이 품속의 칼날을 꺼낸다면 당연히 강화회담은 물건너간다. 자신의 소속을 밝힌다면 녀석의 죽음은 둘째쳐도 내가 한 보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게된다면 전쟁은 계속될 뿐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녀석에게 집중했다. 모든게 저 어린 녀석의 행동에 달려있다. 나는 최악의 상황만을 피하길 빌 수밖에 없었다.

"... 사냥꾼의 시종입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그렇다고 너무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 녀석이 내뱉은 거짓말은 짙은 북부 억양으로 점철되어있있기 때문이다. 다시 폭탄은 총사령관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그래? 좋아. 조심히 돌아가라고. 난 강화회담을 준비해야 하니까."

총사령관은 아까와 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모든 고난이 끝났다. 전쟁도, 끝이다. 그 와중에 총사령관이 던진 말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사냥꾼의 시종이라고 했나?"
"예."
"가서 전해라, 은둔처의 입구를 완전히 매꾸어버리라고."



총사령관은 약속을 지켰다.

나는 묵직한 금화주머니를 다시 한 번 여관주인 앞에 내려놓았다.

"살아올줄은 몰랐죠?"
"내가 준 해초가 부정을 막아준걸꺼요."
"고작 미역 한 줄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술 한 잔단을 냉큼 달라는 손짓을 보여주었다. 맡겨놓은 금화도 많겠다, 이제 거리낄게 없었다. 아까 얻어마시고 온 술 보다는 덜했지만, 못지 않은 알콜향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됬답니까?"
"대성공이었어요. 이제 전쟁도 끝날겁니다."
"이제 막혔던 길도 열리겠군요. 그럼 곧 여관도 떠나시겠네요?"
"이 일이 좋은게 뭐냐면, 급할게 없다는겁니다. 술이 마음에 드니 봄꽃을 보고 가려구요."

그렇게 말하며 한 모금, 두 모금. 가슴속으로 따듯한 기운이 밀려들어와 추위를 몰아냈다. 아직 창 밖에는 겨울바람이 가득했다. 취해서일까? 나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창문 너머로 휙 하고 뿌려버렸다.

"바깥도 이제 곧 따듯해질거요. 술이나 한 잔 따라주세요. 친구가 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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