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6.

철기시대의 마법사

용을 무찌르고 세상을 지키던 힘은 이젠 없지만, 나는 마법사다.

이제는 침대에서 꿈을 꾸는 것이 익숙해질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침을 시작하기 전에 곰곰이 새벽에 꾼 꿈을 떠올려보았다. 아니 뭐, 꿈이라는 것이 무언가 마법적인 힘을 띈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나에게 있어 취미일 뿐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양탄자 위에 섰다. 창밖에는 아직 검은 장막이 걷히지 않았다. 겨울의 새벽 여섯 시는 그런 법이다. 어둡고, 춥다. 그렇다. 춥다. 상당히 춥다. 나는 오른손 검지를 이리저리 돌려서 부드럽게 스트레칭을 한 후, 곧게 힘주어 뻗었다.

전기난로가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나는 화톳불 앞의 고양이처럼 전기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침대에 틀어놓은 전기장판이 훨씬 따듯했지만, 언제까지나 침대에 누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거기다가 내가 이 전기난로를 좋아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전기난로는 전원이 켜지면, 땔나무가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가 나는 기능이 있다. 내가 직접 추가한 기능이다. 나는 모닥불을 좋아한다. 전기난로에는 없는 마법이 깃든 힘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는 없겠지. 모닥불을 지폈다가 쫓겨난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현실과 바람의 타협책이다. 아이고 애석해라.


이곳은 이규보의 대동 사회.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자연에 솔직한 곳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 있는 방도 좁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데 사람들은 이곳을 고시텔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방안이 따듯해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물과 빵이 탁자 위에 놓였다. 보라, 한 방울만 있으면 상처를 치유하고 한 입이면 온종일 걸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

그런 물빵은 아니다. 세세한 무기염류를 제외하면 수돗물과 다를 바는 없었고, 빵도 스티커가 없다는 점을 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빵이었다. 문제점을 하나 꼽자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먹다 보니 조금 물리기 시작한다는 점 뿐이었다.

다시 본 창밖에는 어둠의 장막을 태양이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며칠 전, 동지를 지나친 이래로 태양의 힘은 노루 꼬리만큼 강해지고 있었다. 나는 여름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난로를 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여름에 촛불이라도 켜는 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해주고 있다.

나는 창밖으로 태양이 아직 색칠하지 않은 도화지의 검은색 부분을 보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 새벽하늘에 콕 찔러 별자국을 내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새벽하늘에 새로운 별을 수놓았겠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마법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하릴없지.’

외출준비를 마친 나는 시계를 꺼냈다. 동대문에서 산 쿼츠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8시는 중요한 시간이다. 나의 마나가 가장 충만해지는 시간이라는 뜻은 아니고, 근처에 대학교가 있는데, 부속 도서관이 8시부터 문을 연다.

대학교 근처의 방들은 모두 꽉 차서, 이곳은 대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걸어간다는 것은 조금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나는 고시텔 밖으로 나왔다. 해는 떴지만, 아직은 고요한 아침의 거리이다. 나는 도로변으로 나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택시!”

손을 흔들자마자 바로 택시가 와서 잡혔다. 비록 차원 문을 여는 것은 몇백 년 전에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마법사인 것이다. 썩은 준치는 그대로 택시에 몸을 싣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해주는 마법의 주문을 읊었다.

“혜전대학교 정문이요.”

액정 속의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정문 앞은 고요한 편이었다. 계절학기인 데다가 1교시만 해도 9시부터 시작이니, 아직 50분이나 남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북적거릴 리는 만무했다. 원래 대학생이 1교시에 멀쩡하게 온다는 것은 나같은 마법사가 일으키는 기적의 한 종류이다. 오늘은 청강하는 강의가 없는 날이지만, 내 공부를 개을리할 수는 없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핵융합이다.

몇십여 년 전, 에딩턴이 책을 하나 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손가락에 침 발라서 하늘에 콕 찍는 정도’ 로는 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상심이 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별들이 핵융합으로 그 밝은 빛을 낸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을 때, 내 목표는 분명해졌다.

‘오랜만에 별이나 하나 만들어봐야겠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매일같이 근처 대학교에 나와 책을 읽고, 몰래 강의에 참여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 일 년 동안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 년이 더 흐르자, 어느 정도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풍월을 읊기 시작한 것이다.

E=MC².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수식인가? 질량을 잃으면 에너지가 생겨난다. 이로써 별이 빛난다. 처음 이 수식을 보았을 때 나는 가슴이 너무나도 설랬다. 별을 만드는 청사진을 얻은것만같은 기분이였다.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샘솟는다. 사람이 별을 만들 수 있다면, 어쩌면 열역학 제 2법칙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잃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형! 문 닫아야되요.”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창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는데, 그것보다 가까운 곳에 희철이가 서 있었다. 그는 이 대학교의 기계공학과 학생이다. 공강 철에는 이렇게 도서관 사서로 근로장학생을 하고 있다. 몇 년 동안 도서관 죽돌이로 살게 되니, 이렇게 안면이 트이는 사람도 생겼다.

“어 희철아, 이제 도서관 닫니?”

“닫고 정리해야 알바 가죠.”

“그 학자금대출 때문에?”

“대출 안 낀 사람이 있나요?”

여기 있다. 나는 마법사이기 때문에 학자금대출 없이 이곳을 오가고 있다. 일종의 기적을 부리는 힘이다. 비록 졸업증서는 나오지 않지만, 나에게는 코팅된 종이가 필요 없다. 그때, 희철이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빵 먹을래?”

“당연하죠.”

희철이는 내가 건네 빵을 받아들었다. 원래 도서관에서는 취식이 안된다고 하지만, 뭐 어떤가? 도서관에 보는 눈이라고는 빵을 주는 사람과, 빵을 먹는 사람. 둘 뿐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형은 어떻게 이렇게 갓 구운 빵을 들고 다녀요?”

“마법사라서 그래.”

“힘내요, 저도 1년만 더 버티면 마법사 돼요.”

“그럼 나중에 초대장 보내줄게.”

“아 형, 됐어요. 안 받을 거에요.”


제자를 구하지 못한 아쉬움과 이제 겨우 다섯 번 읽은 책을 뒤로하고, 나는 대학을 떠났다. 세상을 비추던 태양도 강도 높은 노동에 지쳐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야 시간이 없었으니 택시를 탔지만, 퇴근은 버스를 타는 것을 즐긴다.

정확히는, 사람을 보는 것을 즐긴다. 세간에는 관음증이라는 병도 있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이 부분은 세상에 하나 남은 마법사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명확히 해두려고 한다. 단지,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 백 년 조금 안쪽으로 별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가 되어도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버스는 한참을 달리고서야 나를 허름한 정류장에 내려주었다. 이곳이 우리 집은 아니다. 환승을 한 번 해야 한다. 정류장에는 나보다 먼저 온 할머니가 팔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는 전기난로를 켜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뻗어 전기난로를 켰다.

“아이구 학생, 고마워.”

“뭘 요. 빵 드실래요?”

나는 할머니에게 빵을 내밀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밀가루를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면서 마음만 받아주셨다. 대신 나에게 베지밀 하나를 챙겨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은 이른 저넉을 먹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먼저 오고, 나는 정류장을 떠났다. 빙글빙글 돌던 버스는 마침내 고시텔 근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항상 옥상을 먼저 들린다. 옥상이라는 삭막한 콘크리트 바닥 위로는 차가운 밤바람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로 자라난 민들레 한 송이. 하지만 그 줄기는 오늘 누군가 밟은 것인지 꺾여있었다. 나는 그런 민들레의 줄기를 잡았다. 꺾였던 줄기가 펴지고, 생기가 돌아왔다.

이제 나는 다시 일어나 한 번 더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밤하늘에 별자국을 내어본다. 모래에 섞인 규사만큼도 반짝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제는 철기시대니까. 하지만 나는 네온사인으로 둘러싸인 이 콘크리트 옥상에서도 저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나는 마법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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